찬송
성경 본문
전 12:1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찬송묵상
우리들은 부름 받은 젊은이 몸과 마음 다 받쳐서 충성되게 일하자
찬송요약
1절, 우리들은 가슴마다 푸른 꿈 넘쳐나는 젊은이들 한 평생 주 만 따라 살리라
2절, 우리들은 부름 받은 한 형제자매 몸과 마음 다 바쳐서 주 뜻대로 살리라
3절, 우리들은 할 일 많은 나라에 태어났으니 복음 들고 앞장서서 충성되게 일하자
4절, 우리들은 우람하고 광활한 젊은이들 십자가를 높이 들고 하늘 뜻을 이루자
2절, 우리들은 부름 받은 한 형제자매 몸과 마음 다 바쳐서 주 뜻대로 살리라
3절, 우리들은 할 일 많은 나라에 태어났으니 복음 들고 앞장서서 충성되게 일하자
4절, 우리들은 우람하고 광활한 젊은이들 십자가를 높이 들고 하늘 뜻을 이루자
찬송해설
전 12:1을 배경으로 젊은이들의 뜨거운 기상과 패기를 파도친다, 타오르자, 높푸르자, 광활하자, 넓고 깊자, 줄기차자, 우람하자 등의 힘 있고 열정적인 시어로 표현하고 있는 이 찬양은 만주 태생의 목사이며 찬송작가로 캐나나 토론토 한인 연합교회 목사로 시무하고 있는 반병섭(1924~ )목사가 젊은이들을 위한 찬송시를 위촉받고 일본 동지사대학에서 유학당시 작사하였다. 찬송 곡은 평북 용천 태생의 음악가이며 찬송 작가로서 한국교회음악에 크게 기여한 이동훈(李東勳;1922-1975)교수가 만들었다.
찬송프롤로그
1절
가슴마다 파도친다 우리들의 젊은이 눈동자에 어리 운다 우리들의 푸른 꿈
주의 말씀 주의 행함 길과 진리 되시니 우리 평생 한결같이 주 만 따라 살리라
1절, 우리들은 가슴마다 푸른 꿈 넘쳐나는 젊은이들 한 평생 주 만 따라 살리라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젊은이들의 기상과 꿈이 하늘같이 높푸르고 바다 같이 넓고 깊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9월20일 토요일자 국민일보 1면에 ‘한국 니트족<일할 의지 없는 무위도식 청년> 만년 캥거루’라는 제목으로 글이 소개되어 있어 잠시 발표합니다. 『우리나라 청년층 가운데 졸업 후에도 일하지 않거나 일할 의지도 없는 이른바 니트(NEET)족 비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 매우 높은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노동연구원이 펴낸 월간 노동리뷰 9월호 ‘통계프리즘’에 따르면 한국의 15-29세 청년층 가운데 졸업 후 5년경과 시점의 니트 비율은 36.8%로 비교 대상 13개국 중 1위를 기록했다. 2위 이탈리아로 35.6%, 3위 그리스(33.6%), 4위 스페인(31.0%)이었다. 더 특이한 점은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졸업 후 1,3,5년이 경과하도록 니트 비율이 낮아지지 않는 게 특징이라는 것입니다. 즉 졸업 3년 후 니트 비율이 25.8%로 낮아졌다가 5년 후 36.8% 비율로 다시 높아졌습니다.』 이 같은 통계가 사실이라고 할 때에 미래의 한국 사회는 희망이 없다고 단정 지어도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결과가 우리에게 나타난 것일까요? 그리고 이 같은 문제점들을 해결할 방법들은 없는 것일까요? 이를 위해 기독교에서 할 일은 무엇일까요?
개인적인 입장이지만 무엇보다 성장위주의 경제정책, 성적위주의 교육정책, 지역이기주의 정부정책 등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보입니다.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어떤 방법도 가능하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경제 원리였습니다. 지난 8.15 특사에서는 대거 경제인들이 가석방되었습니다. 그런 반면 돈 없고 빽 없고 힘없는 사람은 기약 없는 차가운 감옥생활을 감내해야만 합니다. 이런 경제 원리들이 사람들을 기죽이고 있습니다. 거기다가 날마다 새롭게 뛰는 물가고와 더불어 아파트 값은 내 집 마련의 꿈도 갖지 못하게 되다보니 결혼의 꿈은 저 뒤편으로 물러났습니다. 그리고 성적위주의 교육정책은 학교에서 성적으로 사람의 됨됨이와 우수성을 가르다보니 이미 학생시절부터 잘못 주입된 열등감과 부정적인 자아상으로 인해 더 이상 노력하고 투쟁할 욕구를 상실해버렸습니다. “나는 안 돼!, 해봐도 소용없어, 돈 있고 빽 있는 놈들이 다 해먹잖아! 나 같은 놈은 그저 말단 사원으로 있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야! ”하며 더 높은 꿈과 이상을 가지고 도전하고 개척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거기다가 지역이기주의, 개인이기주의는 어떻습니까? 현대자동차 노사가 6개월 동안을 숙의하여 결정한 내용을 노동자간의 패권다툼으로 결여시키고 말았습니다. 촛불집회는 어떻습니까? 또 불교계의 반발은 어떻습니까? 모두가 자신의 이권에만 눈이 가득합니다. 좀 더 멀리, 좀 더 높이, 좀더 깊이 내다볼 수 있는 미래 정신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기독교가 더 잘못된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믿음의 깊은 우물을 파기보다는 쉽게 교회를 부흥시키려하고 또 쉽고 편안하게 신앙생활하려고 합니다. 지금은 목회하기가 너무나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한국교회의 현상을 보십시오. 모 교회가 사도행전이 28장까지 있는데, 사도행전 29장을 쓴다고 하면서 한국교회에 지성전 30개를 세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 지성전에는 본 교회에서 예배하는 것을 실황중계해서 스크린으로 예배드립니다. 여의도 순복음교회가 한 것을 그대로 따라하고 있습니다. 개교회 목회자를 통한 특성 있는 목회보다는 사람들이 명품브랜드를 찾듯이 명품교회를 찾기 때문에 지교회 성전이 더 교회성장에 효과가 있고 빠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양재동에 지성소를 세웠는데 벌써 교인이 3만 명 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부천에도 지성전을 세웠는데, 성내역에 가면 셔틀버스가 있고, 그 버스를 타면 교회에 간다고 합니다. 5개월 만에 800명이 모였다고 합니다. 이미 평택에도 지성전이 세워진지 벌써 3년째입니다. 그런데 이 같은 현상은 미국 이민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근에 750명모인 교회가 150명 남고 다 그리로 갔다고 합니다.
요즘 백화점 셔틀버스도 없어졌습니다. 아들이 다니는 학교 통학버스도 버스회사의 반발로 없어졌습니다. 이 사회가 경쟁사회인데, 있는 백화점이 셔틀버스를 돌려서 작은 가게들이 죽으면 서로 못 사는 것이다 해서 규제해서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는 버젓이 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도 큰 백화점들은 작은 가게를 생각해서 셔틀버스를 안 돌리는데, 교회는 돌립니다. 작은 교회는 죽으라는 논리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런 현상들이 교회에 대한 반감을 사게 하고 특별히 감정에 예민한 젊은이들은 더욱더 교회를 멀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언제까지 풍선처럼 이쪽을 누르면 저 쪽으로 저쪽을 누르면 이쪽으로 움직이기만 하겠습니까? 과연 이것이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고, 영광의 재림으로 참여할 자들의 모습입니까? 정말 우리의 신앙이란 것이 나 편한 대로, 시설 좋은 대로 찾아다니는 것이 내 신앙이란 말입니까?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주님의 증인이 되서 복음증거하고 주님이 오실 날을 대비해서 충성하라고 하는 데, 우리는 무엇을 찾아다니고 있습니까?
삼일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전병욱 목사가 한국교회와 젊은이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야성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동물원에 갇힌 맹수가 사육사에게 길들여져 맹수로서의 본능을 잃어버리고 순한 동물로 살아가듯 이 땅의 기독교와 젊은이들이 사회의 반발심과 타교단의 득세, 가진 교회들의 기득권 등으로 아예 복음 들고 길거리로 나가려고 하지도 않고 있다며 열변을 토하는 내용을 읽었습니다.
찬송가 2절은 “우리들은 주의 자녀 부름 받은 한 형제 몸과 마음 다 받쳐서 주 뜻대로 살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중소기업이 살아야 경제가 살듯 작은 개척교회와 중소형교회가 살아야 기독교가 부흥합니다. 지금과 같은 이전투구의 양상, 수평이동의 현상을 버리고 정말로 뜨겁게 주님을 사랑하며 증거 하는 교회와 교인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더 나아가 그런 생명력을 전하는 교회들이 곳곳에 세워지고 나타날 때에 한국의 젊은 니트족들을 복음으로 깨어나 힘차게 활동하며 사회에서 일익을 담당하는 귀한 사명자로 젊은이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가슴마다 파도친다 우리들의 젊은이 눈동자에 어리 운다 우리들의 푸른 꿈
주의 말씀 주의 행함 길과 진리 되시니 우리 평생 한결같이 주 만 따라 살리라
1절, 우리들은 가슴마다 푸른 꿈 넘쳐나는 젊은이들 한 평생 주 만 따라 살리라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젊은이들의 기상과 꿈이 하늘같이 높푸르고 바다 같이 넓고 깊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9월20일 토요일자 국민일보 1면에 ‘한국 니트족<일할 의지 없는 무위도식 청년> 만년 캥거루’라는 제목으로 글이 소개되어 있어 잠시 발표합니다. 『우리나라 청년층 가운데 졸업 후에도 일하지 않거나 일할 의지도 없는 이른바 니트(NEET)족 비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 매우 높은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노동연구원이 펴낸 월간 노동리뷰 9월호 ‘통계프리즘’에 따르면 한국의 15-29세 청년층 가운데 졸업 후 5년경과 시점의 니트 비율은 36.8%로 비교 대상 13개국 중 1위를 기록했다. 2위 이탈리아로 35.6%, 3위 그리스(33.6%), 4위 스페인(31.0%)이었다. 더 특이한 점은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졸업 후 1,3,5년이 경과하도록 니트 비율이 낮아지지 않는 게 특징이라는 것입니다. 즉 졸업 3년 후 니트 비율이 25.8%로 낮아졌다가 5년 후 36.8% 비율로 다시 높아졌습니다.』 이 같은 통계가 사실이라고 할 때에 미래의 한국 사회는 희망이 없다고 단정 지어도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결과가 우리에게 나타난 것일까요? 그리고 이 같은 문제점들을 해결할 방법들은 없는 것일까요? 이를 위해 기독교에서 할 일은 무엇일까요?
개인적인 입장이지만 무엇보다 성장위주의 경제정책, 성적위주의 교육정책, 지역이기주의 정부정책 등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보입니다.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어떤 방법도 가능하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경제 원리였습니다. 지난 8.15 특사에서는 대거 경제인들이 가석방되었습니다. 그런 반면 돈 없고 빽 없고 힘없는 사람은 기약 없는 차가운 감옥생활을 감내해야만 합니다. 이런 경제 원리들이 사람들을 기죽이고 있습니다. 거기다가 날마다 새롭게 뛰는 물가고와 더불어 아파트 값은 내 집 마련의 꿈도 갖지 못하게 되다보니 결혼의 꿈은 저 뒤편으로 물러났습니다. 그리고 성적위주의 교육정책은 학교에서 성적으로 사람의 됨됨이와 우수성을 가르다보니 이미 학생시절부터 잘못 주입된 열등감과 부정적인 자아상으로 인해 더 이상 노력하고 투쟁할 욕구를 상실해버렸습니다. “나는 안 돼!, 해봐도 소용없어, 돈 있고 빽 있는 놈들이 다 해먹잖아! 나 같은 놈은 그저 말단 사원으로 있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야! ”하며 더 높은 꿈과 이상을 가지고 도전하고 개척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거기다가 지역이기주의, 개인이기주의는 어떻습니까? 현대자동차 노사가 6개월 동안을 숙의하여 결정한 내용을 노동자간의 패권다툼으로 결여시키고 말았습니다. 촛불집회는 어떻습니까? 또 불교계의 반발은 어떻습니까? 모두가 자신의 이권에만 눈이 가득합니다. 좀 더 멀리, 좀 더 높이, 좀더 깊이 내다볼 수 있는 미래 정신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기독교가 더 잘못된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믿음의 깊은 우물을 파기보다는 쉽게 교회를 부흥시키려하고 또 쉽고 편안하게 신앙생활하려고 합니다. 지금은 목회하기가 너무나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한국교회의 현상을 보십시오. 모 교회가 사도행전이 28장까지 있는데, 사도행전 29장을 쓴다고 하면서 한국교회에 지성전 30개를 세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 지성전에는 본 교회에서 예배하는 것을 실황중계해서 스크린으로 예배드립니다. 여의도 순복음교회가 한 것을 그대로 따라하고 있습니다. 개교회 목회자를 통한 특성 있는 목회보다는 사람들이 명품브랜드를 찾듯이 명품교회를 찾기 때문에 지교회 성전이 더 교회성장에 효과가 있고 빠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양재동에 지성소를 세웠는데 벌써 교인이 3만 명 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부천에도 지성전을 세웠는데, 성내역에 가면 셔틀버스가 있고, 그 버스를 타면 교회에 간다고 합니다. 5개월 만에 800명이 모였다고 합니다. 이미 평택에도 지성전이 세워진지 벌써 3년째입니다. 그런데 이 같은 현상은 미국 이민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근에 750명모인 교회가 150명 남고 다 그리로 갔다고 합니다.
요즘 백화점 셔틀버스도 없어졌습니다. 아들이 다니는 학교 통학버스도 버스회사의 반발로 없어졌습니다. 이 사회가 경쟁사회인데, 있는 백화점이 셔틀버스를 돌려서 작은 가게들이 죽으면 서로 못 사는 것이다 해서 규제해서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는 버젓이 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도 큰 백화점들은 작은 가게를 생각해서 셔틀버스를 안 돌리는데, 교회는 돌립니다. 작은 교회는 죽으라는 논리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런 현상들이 교회에 대한 반감을 사게 하고 특별히 감정에 예민한 젊은이들은 더욱더 교회를 멀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언제까지 풍선처럼 이쪽을 누르면 저 쪽으로 저쪽을 누르면 이쪽으로 움직이기만 하겠습니까? 과연 이것이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고, 영광의 재림으로 참여할 자들의 모습입니까? 정말 우리의 신앙이란 것이 나 편한 대로, 시설 좋은 대로 찾아다니는 것이 내 신앙이란 말입니까?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주님의 증인이 되서 복음증거하고 주님이 오실 날을 대비해서 충성하라고 하는 데, 우리는 무엇을 찾아다니고 있습니까?
삼일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전병욱 목사가 한국교회와 젊은이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야성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동물원에 갇힌 맹수가 사육사에게 길들여져 맹수로서의 본능을 잃어버리고 순한 동물로 살아가듯 이 땅의 기독교와 젊은이들이 사회의 반발심과 타교단의 득세, 가진 교회들의 기득권 등으로 아예 복음 들고 길거리로 나가려고 하지도 않고 있다며 열변을 토하는 내용을 읽었습니다.
찬송가 2절은 “우리들은 주의 자녀 부름 받은 한 형제 몸과 마음 다 받쳐서 주 뜻대로 살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중소기업이 살아야 경제가 살듯 작은 개척교회와 중소형교회가 살아야 기독교가 부흥합니다. 지금과 같은 이전투구의 양상, 수평이동의 현상을 버리고 정말로 뜨겁게 주님을 사랑하며 증거 하는 교회와 교인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더 나아가 그런 생명력을 전하는 교회들이 곳곳에 세워지고 나타날 때에 한국의 젊은 니트족들을 복음으로 깨어나 힘차게 활동하며 사회에서 일익을 담당하는 귀한 사명자로 젊은이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찬송 예화
-조지 워싱턴 커버-
미국의 흑인 노예 출신으로 가난했지만 미국 국회 상원에 가서 연설을 한 사람이 있습니다. 처음 계획은 10분이었는데, 앵콜을 거듭해서 한 시간 반을 강연하였습니다. 이 사람의 이름은 조지 워싱턴 커버 박사입니다. 할머니가 그의 이름을 지어 줄 때에 "너는 비록 흑인이고, 노예지만 미국의 초대대통령 조지 워싱턴을 능가하는 커버가 되라."며 사명을 불어넣어주고 더 나아가 하나님의 신앙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농사를 지면서 자연히 그가 많이 접한 것이 그 당시 땅콩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의 마음속에 땅콩 속에도 하나님의 섭리와 창조의 계획이 있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리고 땅콩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땅콩 한 알 속에서 300가지 상품을 만들었습니다. 화장품을 만들고, 고기를 만들고 땅콩 하나에서 말입니다. 10분을 강의하러 갔다가 한 시간 반을 강의하는데, 이 분이 그때 했던 강의의 내용이 `땅콩 한 알 속에 감추어진 하나님의 창조계획과 섭리`이었습니다. 땅콩 한 알 속에도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면 오늘 나를 향하신, 교회를 향하신, 나라와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가 분명히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조지 워싱턴 커버 박사가 외친 것입니다.
이제 우리도 나의 작은 가슴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품고 세상과 민족을 품는 사명이 나와야 합니다. 이것을 발견하는 사람이 부름 받은 젊은이입니다.
<참고; 인터넷목회정보클럽>
미국의 흑인 노예 출신으로 가난했지만 미국 국회 상원에 가서 연설을 한 사람이 있습니다. 처음 계획은 10분이었는데, 앵콜을 거듭해서 한 시간 반을 강연하였습니다. 이 사람의 이름은 조지 워싱턴 커버 박사입니다. 할머니가 그의 이름을 지어 줄 때에 "너는 비록 흑인이고, 노예지만 미국의 초대대통령 조지 워싱턴을 능가하는 커버가 되라."며 사명을 불어넣어주고 더 나아가 하나님의 신앙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농사를 지면서 자연히 그가 많이 접한 것이 그 당시 땅콩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의 마음속에 땅콩 속에도 하나님의 섭리와 창조의 계획이 있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리고 땅콩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땅콩 한 알 속에서 300가지 상품을 만들었습니다. 화장품을 만들고, 고기를 만들고 땅콩 하나에서 말입니다. 10분을 강의하러 갔다가 한 시간 반을 강의하는데, 이 분이 그때 했던 강의의 내용이 `땅콩 한 알 속에 감추어진 하나님의 창조계획과 섭리`이었습니다. 땅콩 한 알 속에도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면 오늘 나를 향하신, 교회를 향하신, 나라와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가 분명히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조지 워싱턴 커버 박사가 외친 것입니다.
이제 우리도 나의 작은 가슴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품고 세상과 민족을 품는 사명이 나와야 합니다. 이것을 발견하는 사람이 부름 받은 젊은이입니다.
<참고; 인터넷목회정보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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