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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01[일]
620장 여기에 모인 우리
찬송
성경 본문
엡 6:23 “평안과 믿음을 겸한 사랑이 형제들에게 있을지어다.”
찬송묵상
시험을 당할 때에도 언제나 함께 하시는 하나님
찬송요약
1절, 시험을 당할 때에도 언제나 함께 계심을 믿고 주님만을 찬양하며 살아가자.
2절,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고 말씀으로 이겨서 최후 승리를 얻자.
3절, 고통과 슬픔 중에도 뜻하신 일 이루실 것을 믿고 더욱 주님을 의지하며 나가자.
찬송해설
나니 프리시(Naney Price)가 1990년에 작시하고  돈 베직(Don Besig)이 작곡한 '여기에 모인 우리'의 찬송은 우리가 애창하는 나영수 역으로 되어있는 복음성가로 익힐 알려져 있는 찬송입니다. 여기에는 '자여라', '아노라', '믿노라' 등의 감탄형의 의미를 통해 우리가 지금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자신의 위치와 소중함을 깨워 날마다 하나님의 은총 속에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기를 소망하고 있는 찬양이다.
찬송프롤로그
1절 여기에 모인 우리 주의 은총 받은 자여라 주께서 이 자리에 함께 계심을 아노라
언제나 주님만을 찬양하며 따라 가리니 시험을 당할 때도 함께 계심을 믿노라
이 믿음 더욱 굳세라 주가 지켜 주신다. 어둔 밤에도 주의 밝은 빛 인도하여 주신다.

1절, 주님이 언제나 함께 계심을 믿고 시험을 당할 때에도 주님만을 찬양하며 살아가자.

다니엘서 10장 말씀의 배경은 BC 539년 페르시아가 바벨론을 정복한 후에 고레스 왕이 통치할 때로서 이 때 국무총리는 이스라엘에서 포로로 잡혀온 다니엘이었습니다. 다니엘이 이렇게 큰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다니엘에게 날마다 계시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늘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다니엘을 향하여 다니엘서 10장 11절에 "은총을 크게 받은 사람 다니엘아..."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또 19절에도 "가로되 은총을 크게 받은 사람이여 두려워하지 말라 평안하라 강건하라 강건하라 그가 이같이 내게 말하매 내가 곧 힘이 나서 가로되 내 주께서 나로 힘이 나게 하셨사오니 말씀하옵소서."라고 고백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믿는 사람들은 모든 다른 사람들보다 은총을 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은총 받은 사람들 중에는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하게 된 500여명의 성도들을 볼 수 있으며, 더 크게 은총 받은 사람들은 120명의 마가 다락방에서 성령 체험한 성도들입니다. 더 큰 은총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전도대원으로 쓰임을 받은 70명의 제자였습니다. 그 중에서 12명은 제자가 되었고, 요한, 베드로, 야고보는 예수님의 긴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데리고 다니시면서 능력과 계시를 보여주셨습니다. 그 중에서도 요한은 예수님의 사랑을 받는 자라고 표현합니다(요 21:7).

모세도 출애굽기 33장 13절에 보면 주의 목전에서 은총 입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참으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었사오면 원컨대 주의 길을 내게 보이사 내게 주를 알리시고 나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게 하시며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출 33:13)" 마리아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라고 했습니다. "가로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 찌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눅 1:28)"

그런데 오늘 나니 프리시는 오늘 이렇게 교회에 모여 찬양하는 여러분들을 "주의 은총 받은 자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주님께서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18:20)고 약속하신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실 때 어떤 역사가 일어나는지 다니엘 10장에 나타난 말씀을 중심으로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다니엘이 하나님의 은총을 크게 받은 사람으로서 그가 국무총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손이 시험을 당할 때에도 언제나 함께 하사 다니엘을 지켜주셨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서 10장 10절입니다. "한 손이 있어 나를 어루만지기로 내가 떨더니 그가 내 무릎과 손바닥이 땅에 닿게 일으키고" 여기 "하나님의 손"이 나오는데 손을 영어로 Hand라고 하고 히브리말은 야드(yad)라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손은 보호의 손과 심판의 손이 있습니다. 시편 139편 10절에는 보호하고 인도해주시는 손이 나옵니다.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이렇듯 인도해 주시고 붙들어 주시는 주님의 손이 함께 하심을 믿고 믿음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넘어질 때도 있지만 아주 엎드러지지 않습니다. 그 약속이 시편 37편 24절에 있습니다. "저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그러나 패역한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의 손이 임합니다. 신명기와 사사기 2장 15절을 보면 두 곳에서 심판과 멸망의 손이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손으로 그들을 치사 진중에서 멸하신 고로 필경은 다 멸절되었느니라." "그들이 어디를 가든지 여호와의 손이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시매 곧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고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것과 같아서 그들의 괴로움이 심하였더라."

손은 우리 몸의 창입니다. 버스 안에서 떠나는 사람에게 손을 흔드는 것은 "잘 가요, 사랑해요."라는 표현입니다. 또한 손은 만남의 도구입니다. 세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면 "그녀의 볼에 기댄 손을 볼 때, 오! 내가 그녀의 손의 장갑이라면..."이라는 문구가 나옵니다. 즉, 손은 접촉의 도구입니다. 우리 한민족의 문화는 손 문화 즉 젓가락 문화입니다. 서양 사람들은 발로 차는 놀이를 좋아하지만 한국 아이들은 손으로 하는 놀이를 좋아합니다. 여자아이들은 공기놀이, 실뜨기, 손 그림자놀이, 손뼉 맞추기, 땅뺏기 등을 합니다. 이런 놀이들은 다 손가락을 잽싸게 놀리는 기교가 필요합니다. 남자아이들도 윷놀이, 잦히기, 손가락 누르기 등을 합니다. 스포츠에서도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종목을 보면 농구, 배구, 탁구, 핸드볼, 배드민턴, 레슬링, 궁도 등이 있는 데 다 손으로 합니다. 더욱이 컴퓨터의 칩과 같은 작은 미세 공학을 만지는 기술도 한국 사람이 세계 여러 민족들 보다 월등하다고 합니다. 한국 사람들은 물건을 살 때도 손으로 만지고 느끼고 따지고 나서 삽니다. 옷을 살 때도 꼭 손으로 만져보고 사고, 쌀 한말을 살 때도 손으로 만져보고 사야 직성이 풀립니다. 관광할 때도 눈으로 보는 것으로 성이 차지 않습니다. 반드시 손으로 만져봅니다. 만지지 말라는 문구가 있어도 기어이 손으로 찔러보아야 직성이 풀립니다. 기도할 때도 서양 사람들은 두 손을 맞춘 후에 허공을 응시합니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은 손이 닿도록 비벼댑니다. 죽을 때에도 서양 사람들은 괴테의 죽음처럼 빛을 찾아서 의연하게 떠나지만 한국 사람들은 다정한 사람의 손을 잡고 죽음을 맞이합니다. 이렇듯 손의 의미는 중요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큰 은총을 받은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의 손, 승리케 하심의 손이 그와 함께 하십니다.

찬송가에는 어둔 밤에도 주의 밝은 빛으로 인도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손, 하나님의 함께하심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더 구체적인 붙드심과 승리케 하심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명기 5장 15절에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명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여호수아 4장 24절 "이는 땅의 모든 백성으로 여호와의 손이 능하심을 알게 하며 너희로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영원토록 경외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라"
시편 89편 13절 "주의 팔에 능력이 있사오며 주의 손은 강하고 주의 오른손은 높으시니이다"
베드로전서 5장 6절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하나님의 능하고 강하신 손, 큰 은총의 손으로 다니엘을 붙잡아 주심으로 위대한 사람이 되었듯이 시험을 당할 때에도, 어둔 밤에도 언제나 주님이 함께 하시며 밝은 빛으로 인도하심을 분명하게 믿음으로 확신하고 살아가는 성도들은 반드시 최후에 승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능력의 하나님의 손길이 지금 여기에 모여 예배하는 우리 위에도 함께 하심을 믿고 언제나 주님만을 찬양하며 평안함속에 살아가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찬송 예화
-목화 벌레 공적비-

미국 동남부에 땅콩의 생산지로 이름난 알라바마라는 주가 있습니다. 그 주에 있는 어떤 마을에 가면 이상한 기념탑이 서 있습니다. 목화를 갉아먹는 벌레들을 위해서 세운 공적비라고 합니다. 그 비문에는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들에게 번영의 계기를 마련해 주었고, 또 무엇이든지 하면 된다고 하는 신념을 우리에게 일깨워 주었다. 목화 벌레들이여! 우리는 다시 한 번 그대들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참으로 이상한 비문이 아닙니까? 세상을 위해서 공덕을 세운 사람을 위한 공적비가 아니라 목화를 못 쓰게 만들었던 목화 벌레를 위한 공적비라니 이상하지 않습니까?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본래 알라바마주는 목화생산지로 유명했습니다. 목화 재배 때가 되면 주변에 있는 많은 일꾼들이 알라바마주로 모일 정도로 대단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해였습니다. 갑자기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수많은 벌레들이 나타나서 목화들을 갉아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 해 농사는 망치고 말았습니다. 그 때문에 많은 일꾼들이 일자리를 잃게 되었습니다. 제각기 보따리를 싸들고 다른 주로 이사를 가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 다음해에도 역시 어디에서 날아 왔는지 목화 벌레들 때문에 손을 쓰지도 못하고 농사를 망치고 말았습니다. 점점 살기가 어려워지고 병든 사람, 굶주린 사람들이 계속해서 생기게 되자 사람들의 감정마저 악화되어 살벌하기가 그지없었습니다. 그러나 본래 살고 있는 주민들은 결코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는 성서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반드시 선하신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저들은 눈물을 머금고 수십 년 동안 일구어 왔던 목화밭을 완전히 갈아엎었습니다. 그 대신 한번 도 가꾸어 보지 않았던 땅콩을 심기 시작했습니다. 옥수수도 심고, 감자도 심어 보았습니다. 그 결과 저들은 피눈물 나는 노력 끝에 지금과 같이 세계적으로 이름난 땅콩 산지를 만들 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저들이 수십 년 동안 재배하던 목화를 뽑아버리고 땅콩을 심었던 그 무렵 화학 섬유가 개발되기 시작해서 사람들이 질 좋고 값싼 나일론으로 만든 인조 옷감으로 옷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자연히 값이 비싼 목화로 만든 무명 옷감은 팔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주변에 있는 다른 주들은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유독 알라바마 주는 목화 벌레들 때문에 일찌감치 땅콩으로 전업한 결과 저들은 번영의 길을 달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마을에서는 목화 벌레에 대해 감사의 뜻으로 공적비를 세우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참고:인터넷 목회자정보클럽>
관련 찬송
주사랑 안에 살면 397장,
귀하신 친구 내게 계시니 434장,
주의 발자취를 따름이 560장
오늘의 기도
주님의 자녀로 구속함을 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세상적인 가치에 휘둘리며 일희일비 하는 불신앙을 저지르지 않게 하시고 성경적 가치를 따라 살 수 있도록 하늘에 속한 지혜로 충만케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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