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성경 본문
요일 3: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찬송묵상
내 평생 살아온 길 뒤를 돌아보니 걸음마다 다 죄 뿐입니다.
찬송요약
1절, 내 평생 살아온 길 뒤를 돌아보니 다 죄뿐이거늘 내 죄사하신 주의 은혜 크도다.
2절, 나같이 못난 인간 살리려 하늘보좌 버리고 사람형상 입으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
3절, 남은 인생 주와 동행하면서 주의 사랑 전하며, 주의 이름 높이며 살리라.
2절, 나같이 못난 인간 살리려 하늘보좌 버리고 사람형상 입으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
3절, 남은 인생 주와 동행하면서 주의 사랑 전하며, 주의 이름 높이며 살리라.
찬송해설
많은 성도들이 애창하고 있는 복음성가로 “걸음마다 죄악뿐인 죄인을 사하신 주의 은혜 크시니 나의 남은 인생을 주와 동행하면서 주님 사랑 전하며 말씀 따라 살리라”는 이 찬양은 울산광역시 출생으로, 순복음 신학교(現 한세대), 국민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미국 베다니 성서대 명예신학박사, 미국 캘리포니아 성서대 명예문학박사, 미국 리전트대 명예목회학박사, 국민일보 이사장, 회장 (현재),한국기독교총연합회 고문으로 세계최고 최대의 교회의 크기와 성도수를 자랑하는 순복음 교회 원로목사인 조용기(趙鏞基;1936~ )목사가 작시하였으며, 찬송 곡은 서울 출생으로 강남대학교 신학과, 이화여자대학교 음대 및 동 대학원 졸업. 베데스다 크리스천 대학교 졸업(Th.M.) 뉴욕 맨하턴 음악대학대학원졸업(M.M) 오랄로버트대학교 졸업 호서대학교 명예신학박사. 기독교문화대상 수상, 호서대학교 사회교육원장, 예술대학장 역임을 하고 현재 한세대학교 대학원장과 총장인 사모 김성혜(金聖惠;1942~ )교수가 1983년 작곡하였습니다.
찬송프롤로그
1절
내 평생 살아온 길 뒤를 돌아보오니 걸음마다 자국마다 모두 죄 뿐입니다
우리 죄를 사하신 주의 은혜 크시니 골고다의 언덕 길 주님 바라봅니다.
1절, 내 평생 살아온 길 뒤를 돌아보니 다 죄뿐이거늘 내 죄사하신 주의 은혜 크도다.
작사자 조용기 목사님은 “자신의 살아온 길을 뒤돌아보니 걸음마다 자욱마다 모두 죄뿐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복음의 빚진 자로서의 의식을 가지고 평생을 하나님을 위해 복음을 전하며 살았던 사도 바울도 “죄인 중에 내가 괴수”(딤전 1:15)라고 고백하였으며, 또 “지극히 작은 자 보다 더 작은 자”(엡 3:8)라고 자신을 소개하였습니다. 이렇게 자신을 죄인 중에 괴수로 걸음마다 죄뿐이라고 소개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우리 자신의 노력과 열정 가지고는 의인의 삶을 살아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 모두가 죄 가운데 잉태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롬 3:10)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 속에 평강과 기쁨을 누리며 영적 자유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죄 사함을 은총을 받아야합니다.
“우리 죄를 사하신 골고다 주님의 은혜를 깨달아야 합니다.”(찬송가 1절) 사도 바울은 이 은혜를 분명히 깨달아 알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에는 예수 믿는 자를 잡아다 옥에 가두고 죽이는 일에 앞장섰지만 지금은 복음 전하는 사도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은혜의 핵심에는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님의 희생과 사랑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곧 죄인 의식이요, 빚진 자의 의식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평생을 죄인 의식으로 살았습니다. 그냥 죄인의식 정도가 아닙니다. 아예 “죄인 중에 괴수”(딤전 1:15)라고 말합니다. 이 말의 원어적인 의미는 “내가 가장 죄질이 나쁜 죄인이다”라는 뜻입니다. 이렇듯 바울은 평생을 중죄인 의식으로 살았습니다.
일군은 ‘디아코노스’입니다. 종, 머슴, 사역자라는 뜻입니다. 일군이든, 종이든, 사역자든, 직분 자든, 이 감격의 눈물이 사라지면 끝장입니다. 자기 의가, 자기 자랑이, 자기 성과가, 보이기 시작하면 망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눈물이 많아야 합니다. 주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하는 시간이 많아야 합니다. 설마 바리새인이 세리 보다 못하였겠습니까? 첫째 아들이 둘째 아들 보다 못할 리 있겠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자세입니다. 뻣뻣한 자세, 냉랭한 자세, 교만한 마음, 의로운 의식 이게 문제입니다. 그러니 간절함도 없습니다. 매달림도 없습니다. 감격도 없고 감사에도 인색합니다. 눈물은 더구나 없습니다. 오랫동안 교회를 출석한 성도, 직분자들이 더 큰 문제입니다. 죄인 의식, 빚진 자의 자세, 성결함, 거룩함을 잃어버리면 곧 바로 신앙의 위기가 시작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너무 의롭습니다. 너무 만족을 잘합니다. 신앙의 기준이 낮아서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에 절절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신앙의 기준을 높이라고 하면 그저 부담만 된다고 합니다. 거꾸로 이지요. 부담이 아니라, 감격이 되어야 합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님의 은혜가 너무 크도다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나옵니다. 날 받아주소서” 이렇게 고백하며 주님 앞에 나오는 순간 은총의 강물은 넘치고, 감사의 폭포수는 쏟아져 내리는 것입니다. 문제는 뭡니까? 죄인의식입니다. 문제는 감격의식입니다. 문제는 성결의식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박해자요, 포악자였다는 사실을 죽을 때까지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사도될 자격이 없었어. 주님께서 살리시고 주님께서 은혜로 선택해 주신거야!” 이 생각이 평생을 따라 다녔습니다. 복음을 위해 매를 맞고 죽을 고생을 하면서도 늘 부족함을 고백했습니다. 교회를 수십 개 개척을 하고, 복음을 로마로까지 끌고 가는 세계사적인 위대한 일을 하면서도 “나는 죄인이야”라고 말합니다. 모름지기 죄인 의식이 중요합니다. 이 죄인 의식이 감격을 불러일으킵니다.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 지 난 알 수 없도다. 내가 믿고 또 의지함은 내 모든 형편 잘 아는 주님, 늘 돌보아 주실 것을 나는 확실히 아네”(찬 310장) “은혜 없인 오늘도 나는 죄인이네 죄 없는 듯 살아도 생명의 양식되신 예수여! 주리고 목마른 나를 지금 먹이소서! 나를 위한 십자가 대신 지신 예수 내가 찬양합니다. 자신을 버리기 까지 내게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신 주님께 내 마음을 쏟아놓고 엎드려 두 손 들고 죄를 고하니 흰 눈보다 깨끗하게, 양털보다 더 희게 나를 씻어주소서!” 찬양하며 “골고다 언덕 길 오르신 주님 바라보며”(찬송가 1절) 믿음으로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내 평생 살아온 길 뒤를 돌아보오니 걸음마다 자국마다 모두 죄 뿐입니다
우리 죄를 사하신 주의 은혜 크시니 골고다의 언덕 길 주님 바라봅니다.
1절, 내 평생 살아온 길 뒤를 돌아보니 다 죄뿐이거늘 내 죄사하신 주의 은혜 크도다.
작사자 조용기 목사님은 “자신의 살아온 길을 뒤돌아보니 걸음마다 자욱마다 모두 죄뿐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복음의 빚진 자로서의 의식을 가지고 평생을 하나님을 위해 복음을 전하며 살았던 사도 바울도 “죄인 중에 내가 괴수”(딤전 1:15)라고 고백하였으며, 또 “지극히 작은 자 보다 더 작은 자”(엡 3:8)라고 자신을 소개하였습니다. 이렇게 자신을 죄인 중에 괴수로 걸음마다 죄뿐이라고 소개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우리 자신의 노력과 열정 가지고는 의인의 삶을 살아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 모두가 죄 가운데 잉태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롬 3:10)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 속에 평강과 기쁨을 누리며 영적 자유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죄 사함을 은총을 받아야합니다.
“우리 죄를 사하신 골고다 주님의 은혜를 깨달아야 합니다.”(찬송가 1절) 사도 바울은 이 은혜를 분명히 깨달아 알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에는 예수 믿는 자를 잡아다 옥에 가두고 죽이는 일에 앞장섰지만 지금은 복음 전하는 사도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은혜의 핵심에는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님의 희생과 사랑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곧 죄인 의식이요, 빚진 자의 의식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평생을 죄인 의식으로 살았습니다. 그냥 죄인의식 정도가 아닙니다. 아예 “죄인 중에 괴수”(딤전 1:15)라고 말합니다. 이 말의 원어적인 의미는 “내가 가장 죄질이 나쁜 죄인이다”라는 뜻입니다. 이렇듯 바울은 평생을 중죄인 의식으로 살았습니다.
일군은 ‘디아코노스’입니다. 종, 머슴, 사역자라는 뜻입니다. 일군이든, 종이든, 사역자든, 직분 자든, 이 감격의 눈물이 사라지면 끝장입니다. 자기 의가, 자기 자랑이, 자기 성과가, 보이기 시작하면 망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눈물이 많아야 합니다. 주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하는 시간이 많아야 합니다. 설마 바리새인이 세리 보다 못하였겠습니까? 첫째 아들이 둘째 아들 보다 못할 리 있겠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자세입니다. 뻣뻣한 자세, 냉랭한 자세, 교만한 마음, 의로운 의식 이게 문제입니다. 그러니 간절함도 없습니다. 매달림도 없습니다. 감격도 없고 감사에도 인색합니다. 눈물은 더구나 없습니다. 오랫동안 교회를 출석한 성도, 직분자들이 더 큰 문제입니다. 죄인 의식, 빚진 자의 자세, 성결함, 거룩함을 잃어버리면 곧 바로 신앙의 위기가 시작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너무 의롭습니다. 너무 만족을 잘합니다. 신앙의 기준이 낮아서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에 절절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신앙의 기준을 높이라고 하면 그저 부담만 된다고 합니다. 거꾸로 이지요. 부담이 아니라, 감격이 되어야 합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님의 은혜가 너무 크도다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나옵니다. 날 받아주소서” 이렇게 고백하며 주님 앞에 나오는 순간 은총의 강물은 넘치고, 감사의 폭포수는 쏟아져 내리는 것입니다. 문제는 뭡니까? 죄인의식입니다. 문제는 감격의식입니다. 문제는 성결의식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박해자요, 포악자였다는 사실을 죽을 때까지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사도될 자격이 없었어. 주님께서 살리시고 주님께서 은혜로 선택해 주신거야!” 이 생각이 평생을 따라 다녔습니다. 복음을 위해 매를 맞고 죽을 고생을 하면서도 늘 부족함을 고백했습니다. 교회를 수십 개 개척을 하고, 복음을 로마로까지 끌고 가는 세계사적인 위대한 일을 하면서도 “나는 죄인이야”라고 말합니다. 모름지기 죄인 의식이 중요합니다. 이 죄인 의식이 감격을 불러일으킵니다.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 지 난 알 수 없도다. 내가 믿고 또 의지함은 내 모든 형편 잘 아는 주님, 늘 돌보아 주실 것을 나는 확실히 아네”(찬 310장) “은혜 없인 오늘도 나는 죄인이네 죄 없는 듯 살아도 생명의 양식되신 예수여! 주리고 목마른 나를 지금 먹이소서! 나를 위한 십자가 대신 지신 예수 내가 찬양합니다. 자신을 버리기 까지 내게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신 주님께 내 마음을 쏟아놓고 엎드려 두 손 들고 죄를 고하니 흰 눈보다 깨끗하게, 양털보다 더 희게 나를 씻어주소서!” 찬양하며 “골고다 언덕 길 오르신 주님 바라보며”(찬송가 1절) 믿음으로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찬송 예화
- 돌아보는 지혜 -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은밀한 죄 때문에 멸망한다. 이런 죄들은 다른 사람들이 모를 뿐만 아니라 자기 성찰의 결여로 자신도 모르게 지은 죄들이다.
공개적으로 드러난 죄가 아니더라도 발견되지 않은 죄 때문에 결국 멸망하게 된다.
-조셉 얼라인의 ‘돌이켜 회개하라’ 중에서-
우리를 믿음의 길에서 떠나게 하는 것은 한 순간의 삶을 뒤흔들 정도의 강한 시험이 아닙니다. 우리 자신도 모를 만큼 은밀히 세어 들어오는 불법과 비뚤어진 세상의 문화, 물질에 대한 욕심이야말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벌어지게 하는 가장 큰 요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말씀의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늘 경계하며
지나온 길을 돌아봐야 합니다. 미처 회개하지 못하고 지나간 죄와 지금도 반복되는 은밀한 죄의 습관을 주 앞에 드러내 회복을 간구해야 합니다.
스스로 돌아보는 지혜를 발휘할 때 우리는 바로 눈앞에 와 있는 멸망의 구렁텅이를 피해 무사히 인생의 경주를 마치고 주 앞에 설 수 있습니다.
<참고: CTS 새벽종소리>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은밀한 죄 때문에 멸망한다. 이런 죄들은 다른 사람들이 모를 뿐만 아니라 자기 성찰의 결여로 자신도 모르게 지은 죄들이다.
공개적으로 드러난 죄가 아니더라도 발견되지 않은 죄 때문에 결국 멸망하게 된다.
-조셉 얼라인의 ‘돌이켜 회개하라’ 중에서-
우리를 믿음의 길에서 떠나게 하는 것은 한 순간의 삶을 뒤흔들 정도의 강한 시험이 아닙니다. 우리 자신도 모를 만큼 은밀히 세어 들어오는 불법과 비뚤어진 세상의 문화, 물질에 대한 욕심이야말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벌어지게 하는 가장 큰 요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말씀의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늘 경계하며
지나온 길을 돌아봐야 합니다. 미처 회개하지 못하고 지나간 죄와 지금도 반복되는 은밀한 죄의 습관을 주 앞에 드러내 회복을 간구해야 합니다.
스스로 돌아보는 지혜를 발휘할 때 우리는 바로 눈앞에 와 있는 멸망의 구렁텅이를 피해 무사히 인생의 경주를 마치고 주 앞에 설 수 있습니다.
<참고: CTS 새벽종소리>
관련 찬송
나의 갈 길 다가도록 384장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430장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445장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430장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445장
오늘의 기도
예수님을 만나기 전 내 모든 삶이 죄의 강을 이루고 내가 멸망의 포구로 떠내려 갈 때 날 구원하신 주님의 은혜가 누군가에게 흘러 갈 수 있는 은혜의 통로로 나를 써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