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성경 본문
롬 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찬송묵상
이전에 행하던 악한 일과 더러운 모든 죄 온전히 버렸네
찬송요약
1절, 죄에서 구하시려 주 십자가 지셨으니 기쁘게 할렐루야 찬송하세
2절, 주께서 구했으니 이전에 행하던 악한 일과 더러운 모든 죄 온전히 버렸네.
3절, 죄사함 받고 거룩한 백성이 되었으니 이 육신 장막을 벗을 때도 겁날 것 없도다.
4절, 이 세상 떠날 때에 예수의 손목을 굳게 잡고 영원히 천국에서 주와 함께 살리라
2절, 주께서 구했으니 이전에 행하던 악한 일과 더러운 모든 죄 온전히 버렸네.
3절, 죄사함 받고 거룩한 백성이 되었으니 이 육신 장막을 벗을 때도 겁날 것 없도다.
4절, 이 세상 떠날 때에 예수의 손목을 굳게 잡고 영원히 천국에서 주와 함께 살리라
찬송해설
로마서 7장 24-25절을 배경으로 미국 일리노이 주 멘도타 출생의 찬송 작가이자 복음성가 가수로 2천편 이상의 많은 작품을 만든 피터 필립 빌흔(P.P.Bilhorn;1865-1936)이 작사․작곡하였다. 빌혼의 성은 본래 풀혼(Pulhorn)이었는데, 일리노이 주 오타와 법원의 아브라함 링컨이라는 판사의 판결로 빌혼이란 성을 갖게 되었습니다. 빌혼은 처음 형제들과 함께 마차 제조업을 하였다. 1883년 무디 목사네 교회에서 열린 부흥집회에서 주님을 영접하였으며 타고난 아름다운 목소리에 창의력까지 갖춘 그는, 조지 루트와 조지 스테빈스에게서 음악을 공부하고, 무디 목사에 의해 복음찬송 작곡가와 찬양자로 발탁되어 빌리 선데이 목사의 부흥회에서 찬양을 하였다. 평생 2천 여 편의 아름답고 은혜스러운 찬송을 만들었다. 그는 집회 때마다 대형 오르간을 이동하는 일이 너무 힘들어 휴대용 오르간을 연구 개발하여 시카고에 ‘빌혼 휴대용 오르간 회사’를 만들어 큰돈을 벌어 선교 사업에 헌금하였다. 빌혼의 전성기에는 1900년으로서 영국에 가서 수정궁전(Crystal Palace)에서 4천명의 찬양대를지휘하였고, 빅토리아 여왕은 그를 버킹엄 궁전에 초대하여 찬양을 하게 하였다.
찬송프롤로그
1절
우리를 죄에서 구하시려 주 예수 십자가 지셨으니
기쁘게 부르세 할렐루야 나 구원 얻었네
찬송하세 찬송하세 주님 나를 구하셨네 찬송하세 찬송하세 주가 구원하셨네
1절, 죄에서 구하시려 주 십자가 지셨으니 기쁘게 할렐루야 찬송하세
인간을 괴롭히는 가장 큰 문제는 죄의 문제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죄를 범한 이후 죄가 인간에게 들어왔고 그 이후 사단은 죄를 무기로 우리를 열등감, 좌절감, 죄책감으로 올무를 묶어서 사망으로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우리를 처절하게 억압하고, 고통에 처한 존재로 만듭니다. 사람들은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각종 철학과 사상 종교 윤리를 만들었지만 그 어떤 것으로도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사상이나 율법은 근본적으로 인간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언약의 보혈을 심령에 받아들이면,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요소가 다 물러나고 희망의 빛이 찬란하게 비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보혈은 부활의 새 생명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인류의 소망은 ‘이새의 줄기,’ 곧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비롯됩니다. 십자가에 흐르는 그리스도의 피에는 하나님의 사랑·공의의 성품과 인격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는 인간의 죄를 씻어 의롭게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피 외에는 ‘더 좋은 소망’이 생기게 하는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피 외에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단절된 다리를 연결시킬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의 극치는 몸과 피를 내어준 성찬입니다. 자신을 내어준 사랑입니다. 가장 하기 어려운 사랑은 나를 먹으라는 사랑입니다. 동의보감에서 허준의 스승이 자기 몸을 제자에게 내어 줍니다. 몸을 내어 주는 것입니다. 드라마의 절정은 거기에 있습니다. 자기 몸을 해부케 해서 질병을 고치게 하는 사랑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사랑하실 때 자기 몸을 내어 주시면서 떡을 떼어 축사하시고 “받아먹으라”(마 26:26)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받아 마시라. 이것은 너희 죄를 위하여 흘린 나의 피니라.”(27-28) 사랑의 극치는 자기 피를 나누고 함께 있어 주는 것입니다. 제자들을 향산 주님 사랑의 극치를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내어 주시므로 최고의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친히 달리신 이유는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로마서 5장 8절 말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큼 사랑하셨나 하면 자신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하시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친히 성만찬을 통해 십자가의 찢김을 피 흘림을 증거 하셨으며, 무덤에서 부활하심을 통하여 구원의 완성을 이루셨습니다. 더욱이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돌아가시던 날 성소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 같은 역사가 일어난 이유는 히브리서 10장 19-20절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베드로전서 2장 24절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우리는 예수의 피로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되었으며,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사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의 결과입니다. 이 같은 주님의 보혈의 은혜와 대속의 사랑, 십자가의 능력, 부활의 영광을 아는 자들은 그 은혜의 복음에 참여하여 함께 기쁘게 찬송하며 주님께 영광 돌리기를 원합니다.
“우리 주님 나를 구원하시려고 십자가 지셨으니 기쁘게 부르세 할렐루야 나 구원 얻었네, 찬송하세, 찬송하세 주님 나를 구하셨네, 찬송하세, 찬송하세 주가 구원하셨네.”(찬송가 1절)
우리를 죄에서 구하시려 주 예수 십자가 지셨으니
기쁘게 부르세 할렐루야 나 구원 얻었네
찬송하세 찬송하세 주님 나를 구하셨네 찬송하세 찬송하세 주가 구원하셨네
1절, 죄에서 구하시려 주 십자가 지셨으니 기쁘게 할렐루야 찬송하세
인간을 괴롭히는 가장 큰 문제는 죄의 문제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죄를 범한 이후 죄가 인간에게 들어왔고 그 이후 사단은 죄를 무기로 우리를 열등감, 좌절감, 죄책감으로 올무를 묶어서 사망으로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우리를 처절하게 억압하고, 고통에 처한 존재로 만듭니다. 사람들은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각종 철학과 사상 종교 윤리를 만들었지만 그 어떤 것으로도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사상이나 율법은 근본적으로 인간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언약의 보혈을 심령에 받아들이면,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요소가 다 물러나고 희망의 빛이 찬란하게 비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보혈은 부활의 새 생명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인류의 소망은 ‘이새의 줄기,’ 곧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비롯됩니다. 십자가에 흐르는 그리스도의 피에는 하나님의 사랑·공의의 성품과 인격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는 인간의 죄를 씻어 의롭게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피 외에는 ‘더 좋은 소망’이 생기게 하는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피 외에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단절된 다리를 연결시킬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의 극치는 몸과 피를 내어준 성찬입니다. 자신을 내어준 사랑입니다. 가장 하기 어려운 사랑은 나를 먹으라는 사랑입니다. 동의보감에서 허준의 스승이 자기 몸을 제자에게 내어 줍니다. 몸을 내어 주는 것입니다. 드라마의 절정은 거기에 있습니다. 자기 몸을 해부케 해서 질병을 고치게 하는 사랑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사랑하실 때 자기 몸을 내어 주시면서 떡을 떼어 축사하시고 “받아먹으라”(마 26:26)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받아 마시라. 이것은 너희 죄를 위하여 흘린 나의 피니라.”(27-28) 사랑의 극치는 자기 피를 나누고 함께 있어 주는 것입니다. 제자들을 향산 주님 사랑의 극치를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내어 주시므로 최고의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친히 달리신 이유는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로마서 5장 8절 말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큼 사랑하셨나 하면 자신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하시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친히 성만찬을 통해 십자가의 찢김을 피 흘림을 증거 하셨으며, 무덤에서 부활하심을 통하여 구원의 완성을 이루셨습니다. 더욱이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돌아가시던 날 성소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 같은 역사가 일어난 이유는 히브리서 10장 19-20절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베드로전서 2장 24절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우리는 예수의 피로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되었으며,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사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의 결과입니다. 이 같은 주님의 보혈의 은혜와 대속의 사랑, 십자가의 능력, 부활의 영광을 아는 자들은 그 은혜의 복음에 참여하여 함께 기쁘게 찬송하며 주님께 영광 돌리기를 원합니다.
“우리 주님 나를 구원하시려고 십자가 지셨으니 기쁘게 부르세 할렐루야 나 구원 얻었네, 찬송하세, 찬송하세 주님 나를 구하셨네, 찬송하세, 찬송하세 주가 구원하셨네.”(찬송가 1절)
찬송 예화
-십자가를 자랑하는 삶-
16세기 종교개혁 당시 루터는 이신득의(以信得義, Justification by faith) 진리에 눈을 뜨게 해준 갈라디아서를 소중히 여겼습니다. 오늘 갈라디아서의 말씀을 통해 우리도 ‘새로 지음을 받은 자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아 새 사람이 된 성도의 삶은 먼저, 십자가를 자랑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철저하게 십자가 복음의 사람으로서, 십자가 말고는 자랑할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14절). 왜냐하면 십자가 안에 구원이 있고, 자유가 있고, 무한한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거듭나지 않으면 육에 대한 것에만 관심이 있고, 육신적인 것만을 자랑하게 됩니다(12∼13절). 그러나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는 바울과 같이 십자가만을 자랑하고, 십자가만을 증거하게 됩니다. 두 번째로, 새로 지음을 받은 자는 세상에 대하여 죽은 자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십자가의 은혜를 체험하고 거듭난 바울은 스스로를, 영혼을 그리스도로부터 멀어지게 하려는 세상에 대하여서는 죽은 자로 선언합니다(14절). ‘세상에 대하여 죽었다’는 것은 사회구원에 무관심하거나 세상을 도피 하는 삶이 아니라, 전에는 이 세상의 모든 쾌락과 명예와 물질에 만족하고 거기에서 기쁨을 얻었으나, 이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가치관과 인생관, 목적이 신령한 것으로 바뀌었음을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는 삶 속에 예수님의 흔적이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17절)”라고 말했습니다. 여기 ‘흔적’은 ‘스티그마타’로, 소와 양에게 낙인을 찍어 소유주를 나타낼 때나, 도망간 노예가 붙잡히면 불에 달군 인두로 그 노예의 몸에 주인의 이름을 새길 때 사용한 말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스티그마타’라는 말로 자기 몸에 예수님의 흔적을 가졌다고 하면서, 자신은 예수님의 영원한 소유요, 예수님의 종이며 이제는 변할 수 없는 예수께 소속된 신분임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나를 구원하신 십자가만을 자랑합시다. 세상을 향한 우리의 모든 마음을 십자가에 못박고, 예수님의 흔적을 우리 몸에 새김으로, 살든지 죽든지 우리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여김을(빌 1: 20) 받게 하는 승리자의 삶을 사시는 오늘 하루가 되도록 합시다. <참고: CBS 묵상>
16세기 종교개혁 당시 루터는 이신득의(以信得義, Justification by faith) 진리에 눈을 뜨게 해준 갈라디아서를 소중히 여겼습니다. 오늘 갈라디아서의 말씀을 통해 우리도 ‘새로 지음을 받은 자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아 새 사람이 된 성도의 삶은 먼저, 십자가를 자랑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철저하게 십자가 복음의 사람으로서, 십자가 말고는 자랑할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14절). 왜냐하면 십자가 안에 구원이 있고, 자유가 있고, 무한한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거듭나지 않으면 육에 대한 것에만 관심이 있고, 육신적인 것만을 자랑하게 됩니다(12∼13절). 그러나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는 바울과 같이 십자가만을 자랑하고, 십자가만을 증거하게 됩니다. 두 번째로, 새로 지음을 받은 자는 세상에 대하여 죽은 자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십자가의 은혜를 체험하고 거듭난 바울은 스스로를, 영혼을 그리스도로부터 멀어지게 하려는 세상에 대하여서는 죽은 자로 선언합니다(14절). ‘세상에 대하여 죽었다’는 것은 사회구원에 무관심하거나 세상을 도피 하는 삶이 아니라, 전에는 이 세상의 모든 쾌락과 명예와 물질에 만족하고 거기에서 기쁨을 얻었으나, 이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가치관과 인생관, 목적이 신령한 것으로 바뀌었음을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는 삶 속에 예수님의 흔적이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17절)”라고 말했습니다. 여기 ‘흔적’은 ‘스티그마타’로, 소와 양에게 낙인을 찍어 소유주를 나타낼 때나, 도망간 노예가 붙잡히면 불에 달군 인두로 그 노예의 몸에 주인의 이름을 새길 때 사용한 말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스티그마타’라는 말로 자기 몸에 예수님의 흔적을 가졌다고 하면서, 자신은 예수님의 영원한 소유요, 예수님의 종이며 이제는 변할 수 없는 예수께 소속된 신분임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나를 구원하신 십자가만을 자랑합시다. 세상을 향한 우리의 모든 마음을 십자가에 못박고, 예수님의 흔적을 우리 몸에 새김으로, 살든지 죽든지 우리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여김을(빌 1: 20) 받게 하는 승리자의 삶을 사시는 오늘 하루가 되도록 합시다. <참고: CBS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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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기도
그 험한 십자가가 그토록 아름다운 것은 죄의 형벌을 폐하는 보혈의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 생명 다하기까지 부를 노래, 날 구원 하신 이름 예수그리스도 영원한 승리의 노래, 예수그리스도를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