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성경 본문
눅 2:7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찬송묵상
귀하신 몸이 눌 자리 없어 꼴 위에 자는 아기 예수
찬송요약
1절, 저 하늘 별들이 반짝이는 밤 귀하신 몸이 눌 자리 없어 꼴 위에 자네
2절, 육축소리에 아기잠깨나 순하신 예수 우시지 않네
3절, 한없는 사랑으로 온 세상 아기 다 품어주시네 주 품안에 살게 하소서
2절, 육축소리에 아기잠깨나 순하신 예수 우시지 않네
3절, 한없는 사랑으로 온 세상 아기 다 품어주시네 주 품안에 살게 하소서
찬송해설
성탄절 어린이들이 즐겨 부르는 캐럴 송으로 1,2절은 필라델피아의 북아메리카 복음루터교회에서 발행한 ‘학교와 가정 어린이를 위한 책’(1885년)에 그 내용이 실려져 있다. 3절은 미국 감리교 주일학교 총무로 있던 죤 멕파랜드(J.T.McFarland;1851~1913)가 썼다. 특별히 1887년 신시네티에서 출판된 제임스 머레이(J.R.Murray;1841~1905)의 찬송집 ‘소년 소녀를 위한 찬송가’에 수록된 것을 근거로 머레이 작품으로 소개하고 있다.
찬송프롤로그
2절 저 육축소리에 아기 잠 깨나 그 순하신 예수 우시지 않네
귀하신 예수를 나 사랑하니 새날이 밝도록 함께하소서.
2절, 육축소리에 아기잠깨나 순하신 예수 우시지 않네
군대는 나팔소리와 깨고 시골마을은 닭울음소리에 깨고, 베트남은 오토바이소리에 잠을 깬다고 한다. 그런데 아기 예수님은 마구간의 말울음소리에 잠을 깼지만 “그 순하신 예수는 우시지 않네”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평화롭고 순전한 모습입니까?
지금 한국 사회는 아기 예수님을 깨운 육축 소리보다 더 큰 음성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분열시키고, 미움과 시기와 질투를 조장하며 혼란을 야기 시키고 있습니다. IMF의 오랜 반대투쟁으로 인해 국력을 낭비시키며 여․야가 다투더니만 날치기 통과에 이어 국회에서 최루탄 투척과 같은 부끄러운 모습이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잘못된 행위가 영웅과 같은 행위로 대접받으며 좌파와 우파의 극한 대립양상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4대강 사업으로, 서울시장 선거로, 검경의 극한 힘겨루기로 정권말기의 누수현상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정권말기의 증상에 동조하여 버스 및 전기요금, 각종 공공요금이 인상되고 있습니다.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인들 그리고 저소득층 사람들이 힘들어 죽겠다고 하소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카드 수수료 인하로 자신들의 아픔과 고통의 소리를 외치고 있습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반값 등록금을 외치는 젊은이들의 아우성 소리 등 곳곳에서 절망과 아픔과 신음의 소리, 다툼과 폭력의 소리가 난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 아무리 세상이 혼란하고 어지러워도 엄마 품에 안겨있는 어린 아이들은 육축소리와 같은 세상의 소리를 잘 듣지 못합니다. 그저 엄마 품에 평안히 안겨 새근새근 잠을 잘뿐입니다. “말구유에 누우신 아기 예수님이 육축소리에 잠이 깼지만 그 순하신 예수 우시지 않는 것처럼”(찬송가 2절) 어떤 세상의 이유에도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께 속하여 평안을 유지하는 신앙, 삶의 한 순간도 하나님 앞에서 헛되이 낭비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그래서 “항상 기뻐하며 쉬지 않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자”(살전 5:16-18)로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 예수는, 또한 이 땅의 모든 풍요의 대명사인 물질을 거부합니다. 그래서 그는 아주 가난한 목수의 가정을 택하여 탄생하셨습니다. 만약 요셉이 좀 부유한 사람이었다면, 결코 그날 밤 주변머리 없이 만삭이 된 마리아를 마구간에 머물게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아무리 작은 마을 베들레헴에 많은 사람이 모였다 할지라도, 돈만 있었다면 얼마든지 아늑한 방 하나는 얻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순진한 시골 청년인데다가 돈마저 없었기에 남의 집 마구간 신세를 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한 대로, 그는 우리를 부요(富饒)케 하시려고 스스로는 가난해지신 것입니다. 이 땅의 부요는 진정한 부요가 아니기에 그것을 거부하신 것입니다.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 예수는 이 땅의 모든 명예를 거부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받아야 할 명예, 메시아가 받아야 할 명성을 거부하신 것입니다. 이 땅의 위대한 사람들 가운데는 권력과 부는 없어도 명예를 얻었던 사람들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철저하게 그것을 거부하셨습니다. 이 땅의 명예나 명성이란 부질없는 것임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어린 아기들이 권력자들과 정치가들과 명예욕을 가진 자들이 누리려는 탐욕을 알리가 없습니다. 그저 어머니의 품과 젖과 사랑만을 그리워하듯 오늘 주님의 자녀 된 우리들은 이 귀한 대강절에 전능자 하나님께 이 세상의 모든 탐욕과 물질과 명예와 권력을 다 내려놓고 이념적 갈등도 다 내려놓고 하나뿐인 자신의 생명을 십자가에 내어 주사 죄에서 우리를 구원해주신 주님의 사랑을 묵상하며 베풀어 주신 주님의 은혜와 사랑과 평안을 힘들어하고 아파하고 고통 하는 이웃들에게 찾아가서 나누어주는 성탄절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휘황찬란한 네온사인과 밤거리의 향락과, 연말연시의 흥청거림의 고성방가(高聲放歌)는 슬픔을 당한 자에게, 가장 큰 근심을 안고 있는 자에게, 가장 외로운 자에게, 가장 곤고한 자에게 또한 자기 스스로 죄인임에 안타까워하며 흐느끼는 사람들에게 육축소리보다 더 듣기 싫고 고통과 아픔을 주는 소리가 될 것입니다.
성탄의 종소리는 누구보다도 절망 가운데 빠진 사람들에게, 추위에 떨며 아파하는 가난한 이웃들에게 힘 있게 울려 퍼져야 합니다. 우리 모두 하늘의 위로와 사랑과 평안과 행복을 빌어주는 섬김과 나눔의 성탄절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귀하신 예수를 나 사랑하니 새날이 밝도록 함께하소서.
2절, 육축소리에 아기잠깨나 순하신 예수 우시지 않네
군대는 나팔소리와 깨고 시골마을은 닭울음소리에 깨고, 베트남은 오토바이소리에 잠을 깬다고 한다. 그런데 아기 예수님은 마구간의 말울음소리에 잠을 깼지만 “그 순하신 예수는 우시지 않네”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평화롭고 순전한 모습입니까?
지금 한국 사회는 아기 예수님을 깨운 육축 소리보다 더 큰 음성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분열시키고, 미움과 시기와 질투를 조장하며 혼란을 야기 시키고 있습니다. IMF의 오랜 반대투쟁으로 인해 국력을 낭비시키며 여․야가 다투더니만 날치기 통과에 이어 국회에서 최루탄 투척과 같은 부끄러운 모습이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잘못된 행위가 영웅과 같은 행위로 대접받으며 좌파와 우파의 극한 대립양상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4대강 사업으로, 서울시장 선거로, 검경의 극한 힘겨루기로 정권말기의 누수현상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정권말기의 증상에 동조하여 버스 및 전기요금, 각종 공공요금이 인상되고 있습니다.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인들 그리고 저소득층 사람들이 힘들어 죽겠다고 하소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카드 수수료 인하로 자신들의 아픔과 고통의 소리를 외치고 있습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반값 등록금을 외치는 젊은이들의 아우성 소리 등 곳곳에서 절망과 아픔과 신음의 소리, 다툼과 폭력의 소리가 난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 아무리 세상이 혼란하고 어지러워도 엄마 품에 안겨있는 어린 아이들은 육축소리와 같은 세상의 소리를 잘 듣지 못합니다. 그저 엄마 품에 평안히 안겨 새근새근 잠을 잘뿐입니다. “말구유에 누우신 아기 예수님이 육축소리에 잠이 깼지만 그 순하신 예수 우시지 않는 것처럼”(찬송가 2절) 어떤 세상의 이유에도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께 속하여 평안을 유지하는 신앙, 삶의 한 순간도 하나님 앞에서 헛되이 낭비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그래서 “항상 기뻐하며 쉬지 않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자”(살전 5:16-18)로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 예수는, 또한 이 땅의 모든 풍요의 대명사인 물질을 거부합니다. 그래서 그는 아주 가난한 목수의 가정을 택하여 탄생하셨습니다. 만약 요셉이 좀 부유한 사람이었다면, 결코 그날 밤 주변머리 없이 만삭이 된 마리아를 마구간에 머물게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아무리 작은 마을 베들레헴에 많은 사람이 모였다 할지라도, 돈만 있었다면 얼마든지 아늑한 방 하나는 얻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순진한 시골 청년인데다가 돈마저 없었기에 남의 집 마구간 신세를 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한 대로, 그는 우리를 부요(富饒)케 하시려고 스스로는 가난해지신 것입니다. 이 땅의 부요는 진정한 부요가 아니기에 그것을 거부하신 것입니다.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 예수는 이 땅의 모든 명예를 거부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받아야 할 명예, 메시아가 받아야 할 명성을 거부하신 것입니다. 이 땅의 위대한 사람들 가운데는 권력과 부는 없어도 명예를 얻었던 사람들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철저하게 그것을 거부하셨습니다. 이 땅의 명예나 명성이란 부질없는 것임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어린 아기들이 권력자들과 정치가들과 명예욕을 가진 자들이 누리려는 탐욕을 알리가 없습니다. 그저 어머니의 품과 젖과 사랑만을 그리워하듯 오늘 주님의 자녀 된 우리들은 이 귀한 대강절에 전능자 하나님께 이 세상의 모든 탐욕과 물질과 명예와 권력을 다 내려놓고 이념적 갈등도 다 내려놓고 하나뿐인 자신의 생명을 십자가에 내어 주사 죄에서 우리를 구원해주신 주님의 사랑을 묵상하며 베풀어 주신 주님의 은혜와 사랑과 평안을 힘들어하고 아파하고 고통 하는 이웃들에게 찾아가서 나누어주는 성탄절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휘황찬란한 네온사인과 밤거리의 향락과, 연말연시의 흥청거림의 고성방가(高聲放歌)는 슬픔을 당한 자에게, 가장 큰 근심을 안고 있는 자에게, 가장 외로운 자에게, 가장 곤고한 자에게 또한 자기 스스로 죄인임에 안타까워하며 흐느끼는 사람들에게 육축소리보다 더 듣기 싫고 고통과 아픔을 주는 소리가 될 것입니다.
성탄의 종소리는 누구보다도 절망 가운데 빠진 사람들에게, 추위에 떨며 아파하는 가난한 이웃들에게 힘 있게 울려 퍼져야 합니다. 우리 모두 하늘의 위로와 사랑과 평안과 행복을 빌어주는 섬김과 나눔의 성탄절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찬송 예화
구유에 누운 아기
“첫 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눅 2:7). 구유는 짐승의 밥통이다.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며 역사의 알파와 오메가가 되시는 하나님의 아들이 구중궁궐의 황금 침대나 아름다운 요람 위가 아닌 구유에 누우셨다. 성탄의 신비요 역설이다. 하나님은 죄인 된 우리와 함께 있기 위하여 일부러 예수님을 구유에 눕히셨다. 그러므로 구유에 누우신 왕은 죄인과 함께 계시기로 작정한 하나님 사랑의 결정판이다.
하나님은 영광과 부귀와 권세를 한 손에 쥔 군주의 모습으로 오지 않으셨다. 짐승들의 여물통, 구유에 누운 어리고 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오셨다.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시는 방법은 세상의 방법과는 다르다. 영광이 아니라 수치다. 부귀가 아니라 가난이다. 권세가 아니라 겸손이다. 강함이 아니라 약함이다. 힘이 아니라 사랑이다.
<참고: 김흥규 목사(내리교회)/인터넷목회정보클럽>
“첫 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눅 2:7). 구유는 짐승의 밥통이다.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며 역사의 알파와 오메가가 되시는 하나님의 아들이 구중궁궐의 황금 침대나 아름다운 요람 위가 아닌 구유에 누우셨다. 성탄의 신비요 역설이다. 하나님은 죄인 된 우리와 함께 있기 위하여 일부러 예수님을 구유에 눕히셨다. 그러므로 구유에 누우신 왕은 죄인과 함께 계시기로 작정한 하나님 사랑의 결정판이다.
하나님은 영광과 부귀와 권세를 한 손에 쥔 군주의 모습으로 오지 않으셨다. 짐승들의 여물통, 구유에 누운 어리고 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오셨다.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시는 방법은 세상의 방법과는 다르다. 영광이 아니라 수치다. 부귀가 아니라 가난이다. 권세가 아니라 겸손이다. 강함이 아니라 약함이다. 힘이 아니라 사랑이다.
<참고: 김흥규 목사(내리교회)/인터넷목회정보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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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기도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평안과 사랑을 보이신 아기 예수처럼 나의 환경을 보지 않고 오히려 사랑과 평안을 끼치며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