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붙임 받은 감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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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늘찬양하는삶 작성일21-06-20 21:33 조회898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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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붙임 받은 감람나무
롬 11:13-24,2021,06,13.늘찬양교회
옛날부터 농부들은 맛있고 좋은 품질과 다량의 수확을 얻기 위하여 접붙이기라는 농사법을 개발해 왔습니다. 예를 들어 고염 열매는 작기도 하고 떫어서 먹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고염 나무를 자르고 감나무를 접붙이면 맛있고 탐스러운 감이 열립니다. 그뿐만 아니라 머루 포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머루 나무에 포도나무를 접붙여서 만든 머루 포도는 야생머루의 싱싱함과 포도의 달콤함이 어우러져 독특한 맛과 향을 냅니다.
어떤 정원사가 하루는 골짜기에서 가시나무를 퍼와서 장미 동산으로 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 그 가시나무를 장미 나무 사이에 심었습니다. 그다음 정원사는 가시나무의 가지들을 베어 버리고 거기에 장미를 접붙였습니다. 다음 해 그 가시나무에는 어여쁜 장미꽃이 탐스럽게 피었습니다. 그때 정원사는 말했습니다. "너는 본래 가시나무였으나 이제 장미가 되었다. 이제부터 아무도 너를 접근하기 어려운 가시나무라 부르지 못하리라."
이렇듯 접목법은 어디든지 이용될 수 있습니다. 접목법을 잘 활용하고 개발하는 사람들은 그만큼 성공확률이 높습니다. 현대는 톡톡 튀는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찾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오늘 말씀에서 돌 감람나무인 이방인들을 참 감람나무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접붙임을 시키므로 복음이 전 세계로 확장되어 가는 구원의 원리와 복음의 확장성에 대하여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Ⅰ. 원가지가 꺾인 이유
본문의 비유에 나오는 원 가지인 참 감람나무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접붙임 가지인 돌 감람나무는 구원의 여망이 전혀 없는 이방인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원 가지인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꺾으신 이유는 그들의 불 신앙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첫째, 원 가지가 꺾인 것은 이방인으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19절입니다. “그러면 네 말이 가지들이 꺾인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리니..” 여기서 말하는 “나로”는 바울 자신을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1장에서 사도 바울은 자기 민족들을 향해서 눈물을 흘립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을 받았지만 사실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예수 믿는 사람을 핍박하다가 예수를 알게 되었고, 그 후 사도 바울은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복음을 거부했습니다. 오히려 복음을 전하는 바울을 돌로 쳐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복음이 이방인에게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사도 바울은 “아, 하나님께서는 유대인이 복음을 거부하게 하시고 나를 이방인의 사도로 불러주셨구나!”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원가지를 꺾은 이유가 “나로(바울) 하여금 이방인에게 복음을 듣게 하여 참 감람나무에 접붙이려고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런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3차에 걸쳐 선교여행을 떠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로마교회 교인들 앞에 서서 ”옳도다 저희는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고 너는 믿음으로 섰느니라”(20절) 밝히며 “너희도 참 가람나무처럼 꺾이지 않도록 복음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 참 감람나무에 담긴 복음의 비밀은 무엇일까요?
참 감람나무란 선민으로 택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뜻하기도 하지만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해 줍니다. 다시 말해 율법에서 떠나 복음의 본질이자 생명이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함으로 건강한 가지로 자라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으로 참 감람나무의 뿌리가 되게 하시고 이스라엘로 그 줄기로 하신 일은 이스라엘만을 위한 것이 아니요, 이방인들도 그 나무에 접붙임을 받아 구원에 이르게 하시므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너를 복의 근원으로 삼아 모든 민족이 형통하게 하리라”는 약속이 이 세상 모든 민족에게 하신 약속이라는 것입니다.(롬 4:16)
육신적으로 말하면 아브라함과 이방인과는 아무런 관련성이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아브라함과 이방인에게 이어지게 되었으며 아브라함의 약속이 전체 이방인에게 미치게 된 것입니다.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고 했습니다.(갈 3:29)
셋째, 열매를 맺는 나무는 오직 참 감람나무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모든 사역을 때를 따라 역사하시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태어나심을 기점으로 하여 아브라함의 믿음을 이방인에게 전파하게 하셨는데 이것이 복음입니다.
“그러면 참 감람나무 이었던 이스라엘은 완전히 버림받은 것인가?” 하는 물음이 나옵니다.
바울은 이에 대하여 “아니라”는 것입니다. 11장 1절에서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합니다.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전하시고 가르치신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이스라엘이 통째로 모두 하나님에 의해 버림받은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는 그 증거로서 자기 자신을 보라 합니다: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11:1)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순수한 이스라엘 혈통의 사도 바울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뿐 아니라 그를 열심히 전하며 증언하고 있다는 사실이 바로 하나님께서 오래 전부터 알고 계시던 자신의 택하신 백성을 통째로 버리신 것이 아니라는 증거라는 말입니다.
더 나아가 바울은 11장 2-5절에 선지자 엘리야 때의 일어난 일을 비유로 들면서 엘리야 선지자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고발하면서 “주여 그들이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 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 할 때 하나님은 “아니다. 너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 명을 남겨 두었다.”고 하시면서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서도 복음을 지키며 나를 위해 눈물 흘리며 기도하는 자들, 다시 말해 참 감람나무로 남아 있는 그들을 지금도 은혜로 택하여 돌보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집트에 가면 악취가 코를 찌르는 쓰레기 마을이 있는데 그곳에는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며 믿음의 순결과 예수 신앙을 지키기 위해 집단으로 거주하는 신앙인들이 있듯이 이스라엘 땅에도 참 감람나무의 원뿌리와 같은 구원받을 택한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Ⅱ. 높은데 마음을 두지 말고 두려워하라.
바울은 본문 20절과 21절에서 참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은 돌 감람나무 즉 로마 교인 (이방인)들이 주의해야 할 영적 가르침에 대하여 “옳도다 그들은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경고하는 내용일까요?
첫째,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21절)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잠정적으로 버리셨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원 가지들을 아끼지 아니하신 것은 그들의 불신앙 때문이었습니다. 하물며 택한 백성들도 불신앙으로 인하여 버림을 받았다면 이방 사람들인 너희일까보냐! 너희들도 그들처럼 불신앙 중에 거하면 버린 바 될 수밖에 없다고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신앙, 복음의 원리, 십자가의 복음, 부활의 생명을 버리고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쫓아 세상으로 나가면 너희들도 참 감람나무처럼 꺾인 바 될 것이니 그렇게 되지 않도록 복음의 원리를 쫓아 믿음으로, 순결함으로, 담대함으로 한 알의 밀알로, 그리스도의 향기로 이 땅에 빛과 소금의 직분을 감당하며 주님께 영광 돌리는 주의 백성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높은데 마음을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높은 마음을 품지 말아야 할 일은 우리는 돌 감람나무의 처지에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참 감람나무의 뿌리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그 가지들도 아니었습니다. 아무 쓸모없는 돌 감람나무였습니다. 하나님과 원수 된 자리에서 아무짝에도 쓰지 못할 돌 감람나무 열매를 맺어온 가지였습니다. 이 가지가 참 감람나무에 접붙인 바 된 것은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요 긍휼히 여기시는 사랑에서입니다.
그런데 요즘 한국교회가 가관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들이 한국에 즐비하다 보니 우리가 뭐 선민 이스라엘이라도 된 듯이 착각하며 교만하게 행합니다. 교회 목사들이 교회 건물과 교인들의 숫자를 빌미로 제사장처럼 높임을 받으려고 합니다. 교인들도 성지순례를 가서는 유대인들을 구원받지 못한 불쌍한 눈으로만 보며 교만하게 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이방인은 결코 자랑할 수 없다. 결코, 교만해서는 안 된다. 너희의 축복의 뿌리가 어디인지를 잘 살펴보라.”고 경고하십니다. 이것을 사도 바울은 우리가 이해하기 쉽도록 비유로 16절에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 여러분, 떡덩이가 거룩해서 가루가 거룩한 것이 아니라, 첫 열매 즉 가루가 거룩하기 때문에 떡덩이가 거룩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이 거룩하기 때문에 이방인이 거룩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이전에 그 원 가지였던 이스라엘을 향하여 자긍하며 높은 마음을 품을 수 있겠습니까? 더 나아가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믿는 사람들은 항상 존경하는 마음과 겸손한 마음으로 대하며 주님 섬기듯이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본 자가 없되 사랑으로 이웃을 섬기는 우리의 모습을 통하여 예수님께로 돌아오게 해야 한다는 사명이 우리에게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요일 4:12).
셋째, 하나님의 인자에 거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본문 22절에 “넘어지는 자에게는 준엄하심이 있다”고 했습니다. 달리 말하면 복음에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사랑과 긍휼 대신에 엄위가 그들을 다스릴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 하나님의 인자에 거하는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열매를 맺는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죄를 멀리하고 회개하는 생활을 철저히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만들고 섬겼을 때 그들을 치셨고 포로로 잡혀가서 고통 당하게 하셨습니다. 또한 질병과 가뭄 등 자연의 재난까지 내리셨습니다. 심지어 택함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면으로 흩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방인인 우리야 어떻겠습니까?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예배를 비롯한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인 문제들이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열망, 복음의 열정 등이 식어지고 교회가 자신들 만의 성역을 쌓다 보니 일어나는 채찍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은 창조주이자 모든 만물을 다스리는 전능자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오로지 하나님만이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그분만이 섬김을 받으셔야 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신명기 5장 7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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