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에 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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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늘찬양하는삶 작성일21-06-20 21:34 조회904회 댓글0건첨부파일
- 2021년 5월 30일- 거기서 나오라.hwp (48.5K) 33회 다운로드 DATE : 2021-06-20 21:3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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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기서 나오라 ♣
삼상 22:1-5, 2021,05.30.늘찬양교회
페이스북 친구인 김주석 목사가 쓴 글부터 소개하면서 말씀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창원에서 담임목사로 시무할 때 그 교회는 국회의원 출마한 장로, 교수인 장로, 의사인 집사, 중소기업사장, 경남남성CBMC회장, 경남여성CBMC회장, 고등학교교사, 대부분 자영업 사장들이 개척한 교회였는데 소위 창원에서 기독인중 날고 긴다는 자칭 엘리트성도들이 개척을 했던 교회였다. 나포함 후보6명이 거론되었는데 만장일치로 내가 담임목사로 선택이 되었다. 2년간 교회가 2배로 성장했지만 점차 드러나는 교회 내부의 모습은 보고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교회가 아니라 로타리클럽 기형집단 같더라.
아내에게 "여보! 쪽팔려서 목사라는 이름으로 한 발짝도 가기 싫어. 목사 안할래. 그냥 자연인으로 돌아가자.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가서 거기서 목사답게 가난한 사람들 섬기며 전도하며 살자." 울면서 예기 했더니 아내가 잠시 생각하다가 "당신 하고 싶은 데로 하세요. 저는 끝까지 따라갈게요."
교회서 5천만 원 전세금을 전별금으로 주겠다고 해서 중고등부 아이들에게 장학금으로 쓰라고 하고 빈손으로 나와 나는 하청업체 환경미화원으로 아내는 공장의 공순이로 2년간 살았다. 큰 애가 대학 들어갈 시기에 세간 살림과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났다...
나는 개척 후 교인들에게 설교시간에 이렇게 말하곤 한다. 생각 없이 앵무새처럼 아멘! 할렐루야 복창하지 마세요. 가슴에 말씀이 진짜 사무칠 때 삶을 통하여 속에서 우러나올 때 고백하는 아멘 할렐루야! 를 여러분에게 듣고 싶습니다.
세상이 돈에 미쳐가고 정치도 경제도 사회도 예술계도 교육계도 성직자도 교회도 목사도 돈에 미쳐간다. 지금 교회는 세상의 풍자의 대상이 되어 개독교라고 한다.
크리스천도 아니라고 말을 못할 정도이다. 지금은 아멘 할렐루야 외칠 때가 아니라 교회를 바라보고 울 때이다. 내 말이 틀렸다면 내가 미친 목사 맞다. 목사가 돈이 없지 가오(폼-form)’가 없나?
삼사 대 언약을 지키고 복을 누리려면 되는 대로 교회를 다녀서는 안 된다.
소위 비범해야 한다. 철저해야 한다. 내가 믿는다고 교회 다닌다고 목사라고 모두가 다 삼사 대 하나님의 복을 받는 것이 아니다. 목사인 나라도 신앙이 건강하지 못하면 삼사 대가 복 받는 것이 아니라 나로 인해 자녀들이 영영 하나님으로부터 떠날 수도 있다.
자녀의 무너짐은 부모에게서 시작된다.
자녀의 세워짐도 부모로부터 시작된다.
나는 딸에게 잔소리를 하지 않는 편인데 이 말은 강한 어조로 자주 강조한다.
"예인아 예나야! 너희가 복을 받으려면 아빠가 비범하게 살아야 하고 너희 자녀가 복을 받으려면 너희가 비범하게 살아야 한다. 신앙도 A급 신앙이 있고 B급 신앙이 있고 C급 신앙도 있고 F급신앙도 있단다. 그러나 이왕 믿으려면 A급 신앙으로 살아야 하지 않겠니?"
곧 가정의 달 5월이 시작된다. "주님! 자녀의 신앙을 위하여 다시 마음을 동이고 허리띠를 졸라매게 하옵소서!"[출 12:24]」
Ⅰ. 가드로 피신하는 다윗
사도행전 13장 22절에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 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
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에 나와 있듯이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 신실한 믿음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기대가 누구보다 컸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은 몰라도 다윗만큼은 어떤 시련과 역경이 닥쳐와도 능히 믿음으로 잘 극복해 나갈 수 있는 사람이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에 보면 다윗의 행동은 우리를 실망스럽게 만듭니다. 다윗은 사울의 죽임을 피하여 사무엘 선지가 있는 라마 나욧의 선지학교에 피신하여 숨었습니다. 사울이 그것을 알고 라마 나욧 까지 쫓아오자 다윗은 그곳을 떠나 여호와의 법궤와 제사장이 있는 놉 땅으로 도망쳤습니다. 그리고 놉의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가서 거짓을 꾸며 말하고 거룩한 진설병과 골리앗의 칼을 얻어 갖고 나옵니다. 그 일로 인해 아히멜렉과 그 일가족이 사울 왕에게 죽임을 당하는 부끄러운 결과를 가져옵니다.(삼상 22:18)
죄 없는 피가 희생되어진 보람도 없이 시간이 지나자 다윗은 여전히 배가 고팠으며, 거짓말
을 해가면서 얻은 골리앗의 칼을 손에 잡고 있었으나 그것이 그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불안과 두려움까지 몰아 내주지는 못했습니다. 다윗은 그 두려움을 이기지 못한 채 결국 놉 땅을 떠나 이스라엘 백성들의 대적인 이방 블레셋 사람들이 사는 가드 땅으로 사울을 피해
숨어 들어갔습니다. “그 날에 다윗이 사울을 두려워하여 일어나 도망하여 가드 왕 아기스에
게로 가니”(삼상 21:10) 다윗이 가드 땅을 택한 이후는 가드 왕 아기스와 친분이 있어서라
는 말도 있지만 그보다 앞서 가드 땅이 블레셋 땅으로 이스라엘과 적대 관계에 있기 때문에 사울이 적국까지 자신을 잡으러 오지 않으리라고 판단하여 안전하리라고 믿고 가드 땅으로
피신한 것입니다.
코로나 19로 인한 비대면 예배로 인하여 교인들이 교회예배에 참석하지 못하므로 지금 많
은 교회와 목회자들이 큰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대형교회들은 헌금액수가 급감하자 가장 먼저 부목사들과 행정목사들을 줄이는 구조조정을 감행하였습니다. 그리고 개척교회
들은 상가월세도 지불하지 못해 건물에서 쫓겨나고 있습니다. 이렇게 원하지 않게 많은 교회가 문을 닫고 일자리를 잃은 목회자들이 거리로, 나와서 야간 대리운전을 비롯하여 각종 채소와 과일 장사, 쿠팡배달, 공사장 인부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
가고 있습니다.
멋진 양복과 구두를 신고 폼 나는 흰색와이샤스와 넥타이를 매고 머리에는 기름을 바르고
많은 교인들로부터 존경과 섬김을 받았던 목회자들이 하루아침에 일용직 근로자가 되어 하루의 끼니를 걱정하며 생활할 줄은 꿈도 못 꾸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이기에 앞서
집안의 가장이기 때문에 가정의 책임 또한 소홀이 할 수가 없어서 불가피하게 택한 일입
니다. 그런데 이런 목회자들의 행동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습니다. 비난하는 사람
들은 자신도 노후에 그렇게 되지 않을까 두려워하여 이중직을 반대하는 목사들 밖에는 없습니다.
그런데 나름대로 안전하게 피신하였다고 하는 가드 땅에서 다윗은 대 망신을 당합니다.
다윗이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가드 땅에 들어왔는데 그곳 사람들이 골리앗을 죽인 다윗을 알아본 것입니다. 진퇴양난에 빠진 다윗은 위기 탈출을 위하여 가드 왕 아기스와 백성들 앞에서 대문짝을 끼적거리며 침을 수염에 흘리며 미친 사람의 행동을 하였습니다.
이 얼마나 부끄럽고 추악한 모습입니까?
저도 한 때 인생2막을 일하는 목회자로 출발하기 위하여 학교 등록금이 필요하여 요양
보호사로 일할 때 75㎏ 이상 나가는 와상환자를 돌보았습니다. 그 때 식사도우미는 물론 용변까지 침대에서 처리해야 하였기에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모릅니다. 이렇듯 인생 2막의 출발은 힘들고 어려웠습니다.
다윗은 이런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꾀를 쓰는 자는 자기 꾀로서 망할 수도 있다.”는 뼈
아픈 교훈을 배웠을 것입니다. 주님을 구주로 영접하였을 때 제일 먼저 주시는 것이 하나
님이 주시는 평강인데, 지금 다윗은 믿음을 잃어버리므로 그 마음에 두려움과 근심과 염려가 가득한 것입니다.
Ⅱ. 아둘람 굴로 피신한 다윗
다윗은 가드 왕 아기스와 백성들에게서 간신히 건짐을 받고 아둘람 굴로 도망을 왔습니다. (삼상 22:1).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이 그간 행동한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잘못된 것인가를 회개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인가?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이때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지은 시가 시편 56편과 57편의 시입니다.
먼저 시 56편에서는 “내가 여호와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올 지라 내가 하나님을 의지 하였은즉 두려워 아니하리 이다.”는 고백을 하였으며, 이어서 시 57편에서는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
하리이다.”는 고백을 하였습니다. 이 두 고백의 공통점은 받은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회복하였다는 것입니다.
나는 이 땅의 많은 목회자와 성도들이 코로나 19로 인한 어려움 속에서 그동안 교회 안에
서만 머물렀던 신앙을 회개하고 세상에 나가 일터와 직장에서 고통과 어려움을 직접 몸으로 경험하면서 얻은 영성을 말씀과 신앙으로 재해석하여 바른 성화운동, 회개운동이 일어날 때 한국 교회가 건강해질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한국교회는 하나님의 뜻과는 달리 자신의 교회만을 성장시키기 위하여 모든 것을 교회에 투자하게 하였고 그 위에 목회자는 제사장을 가장한 권력자의 모습으로 호위호식을 하며 지내왔습니다. 이런 잘못된 모습을 많은 목회자와 성도들이 삶의 현장에서 땀과 노동을 통하여 훈련을 받으면서 무엇이 참된 복음인가? 를 깨닫는 절호의 기회가 되기를 소망합
니다.
참으로 놀라운 것은 다윗이 가드 땅의 훈련을 통해서 무엇이 내 마음에 염려와 두려움을 몰아내며 참된 평화와 안식과 기쁨이 주어지는 것인가를 깨닫게 되었으며 더 나아가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고 주님만을 높이겠다는 고백과 찬양이 있은 후에 하나님은 사울 왕 아래서 핍박받고 압제받던 자들 사백 명 가량을 다윗에게 붙여주셨습니다.
참고로 아이젠하워 장군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장군은 종종 병사들 사이로 걸어 다녔다고 합니다. 어느 날 사병들이 전투 준비를 하고 있는데, 잔뜩 풀이 죽은 한 병사가 그의 눈에 띄었습니다. “자네, 기분이 어떤가?” “장군님, 저는 무척 긴장이 됩니다. 두 달 전에 부상을 당해서 어제 겨우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기분이 썩 좋지 않습니다.” 보통 장군이라면, “아니, 자네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자네가 정말 미합중국 군인이 맞나?”라고 하면서 야단을 쳤을 것입니다. 아니면 “겁먹을 필요 없네. 자네 뒤에는 세계 최고의 부대가 버티고 있으니까”라고 말하면서 겁에 질린 병사의 기운을 돋우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달랐습니다. “그런가? 자네와 나는 통하는 데가 있구먼, 나도 걱정이 되거든...., 우리 함께 저 강 쪽으로 걸어가면서 얘기 좀 하세. 그러면 서로 힘이 될 거야.”
아이젠하워 장군은 부하의 걱정하는 마음을 읽을 줄 알았습니다. 그는 걱정하는 부하의 마음을 위로할 줄 아는 지도자였습니다. 일반병사들이 아이젠하워 장군에게 충성을 다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목회자들은 그렇지가 않은 것 같습니다, 지금 코로나로 인해 모두가 다 경제적으로 어려워하는데 이 위기에 교회 건축을 시작한 후배 목사가 있습니다. 총회장까지 내년에 출마하겠다는 포부를 갖고 계신 목사님이신데...
성도들에게 교회에 헌금과 충성을 강조하는 것은 성도들의 마음과는 너무나 먼 목회자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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