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에게 매인 여인
페이지 정보
작성자 늘찬양하는삶 작성일21-06-20 21:32 조회744회 댓글0건첨부파일
- 21년05월9일-남편에게 매인 여인.hwp (20.0K) 33회 다운로드 DATE : 2021-06-20 21:32:15
본문
남편에게 매인 여인
롬 7:1-6,2021,05.16.늘찬양교회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비유의 말씀은 "남편에게 매인 여인의 비유"입니다. 이 비유의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죄에서나 율법에서나 기타 모든 얽매이기 쉬운 것으로부터 참으로 자유 할 수 있는 길과 더불어 복음의 행복을 결혼의 비유아래 전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특별히 본문에서 관심을 갖고 보아야할 장면은 ‘한 남편에게 매인 바 된 여인’의 모습입니다. 이것은 바꾸어서 ‘한 여인에게 매인 바 된 남편의 모습’과 동일합니다.
Ⅰ. 결혼의 굴레
지금도 상당부분 그렇습니다만 2000년 전에는 철저하게 남성 중심의 결혼이었습니다. 지금의 부부관계처럼 자유스러운 관계가 아니라 예속의 관계였습니다. 그 당시는 남편만이 이혼할 권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이혼한 권리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일단 여자가 결혼을 하면 남편에게 모든 것이 매이게 되는 것입니다. 육체도 그렇고 정신도 그렇고, 물질적으로도 매이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결혼은 법으로 매이는 것입니다.
결혼하지 않는 남자나 여자는 누구에게 매여 있는 몸이 아닙니다. 그들은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단 결혼을 하면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 아내는 남편에게 매인 몸입니다. 어디 아내뿐이겠습니까? 남편도 아내가 살아 있을 동안에는 그 아내에게 매인바가 되는 것입니다.
매이기 싫으면 결혼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결혼은 서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매이겠다고 약속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법은 그것을 보장해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것을 깨트리고 서로에게 매이지 않겠다고 하고 자유부인 혹은 자유 남편이 되어서 홀로 행동을 한다거나 다른 만남, 다른 사랑을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EX) 옛날 어느 집에 스스로 완벽을 추구하는 한 남편이 있었습니다. 그 남편은 여러 가지 규칙과 법을 정해 놓고 아내에게 그대로 따르도록 요구하는 폭군 남편이었습니다. 그 여인에게 있어서 남편이 아니라, 사실 짐승이었습니다. 아내를 식모처럼, 노예처럼 부려먹습니다. 자신이 정해 놓은 규칙을 조금이라도 어기면 그 날은 전쟁을 치루는 날이었습니다.
정해 놓은 시간에 밥을 차려오지 않으면 큰 소리가 나고 심하면 죽도록 매를 맞기도 합니다. 논에 일 나가려고 하는데, 새참과 점심이 제대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난리가 납니다. 저녁에 일터에서 돌아왔는데, 씻을 물을 준비해 놓지 않으면 동네방네가 떠나가라고 고함을 지릅니다. 고생을 하지 않으려면 남편이 정해 놓은 규칙을 다 지키면 되는데, 그것을 다 지킨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아내는 처음 결혼할 때만해도 '인내'라는 단어를 생각하며 이를 악물고 살았지만, 갈수록 더 심한 고난의 생활입니다. 도저히 견디다 못해, 이혼을 생각합니다. 하지만 서슬 퍼런 친정아버지가 가문에 먹칠을 한다고 노발대발할 것이 뻔 하기 때문에, 이혼은 꿈도 꾸지를 못합니다. 어쩔 수 없이 그저 살아야 합니다. 차라리 남편이 죽어 버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만, 오히려 남편은 그 흔한 감기도 한번 걸리지 않을 정도로 건강하게 삽니다. 완전히 소망을 잃은 채, 매일 매일 지옥 같은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아내의 소원이 무엇일까요? 이 부인이 무엇을 기도할까요? 남편이 죽는 것입니다. 남편이 죽는 순간부터 더 이상 매를 맞지 않아도 되고, 어렵고 힘든 노예 같은 생활을 하지 않아도 되며, 자유 부인이 될 수 있습니다. 남편이 죽으면 해방이 될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이야기가 오늘 본문이 말씀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본문 2절과 3절을 보겠습니다. "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 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났느니라. 그러므로 만일 그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부라 이르되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자유하게 되나니 다른 남자에게 갈지라도 음부가 되지 아니하느니라." 이 여인의 소원은 폭군 남편이 죽는 것이었습니다. 꿈에도 소원은 통일이 아니라, 폭군 남편이 죽는 것이었습니다.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이 아니라, 남편이 오늘 죽을까? 내일 죽을까? 하며 남편 죽는 날 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남편이 죽지 않고 날마다 건강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떻게 해야 폭군 남편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까? 그것은 본인이 죽는 것입니다. 죽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Ⅱ. 신랑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면
사도 바울은 율법과 은혜를 설명하기 위해서 "남편에게 매인 여인의 비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폭군 남편은 바로 율법과 죄를 뜻합니다. 그리고 아내는 연약한 우리 인간을 뜻합니다. 아내인 우리가 폭군 남편인 율법이 정해놓은 규칙을 다 지키며 무조건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인간으로 그것은 다 지킬 수가 없습니다.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다 지키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죄인으로서 날마다 지옥 같은 생활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폭군 남편인 죄의 율법은 결혼이란 구속의 울타리 안에서 각종 폭력과, 비웃음, 조롱, 멸시, 천대 등 각종 악행을 자행해 왔습니다. 마치 경찰이 부부싸움 신고가 들어와서 벨을 누르고 찾아가면 왜 남의 일에 신경쓰느냐? 하며 당당하듯이 율법과 죄악은 우리의 행위나 우리의 감정, 우리의 의지, 나아가서는 우리의 사상까지도 통제하고 다스리려고 합니다. 이것이 폭군 남편을 둔 여인의 한계이고 더 나아가 인간의 한계입니다. 그 때문에 사도 바울도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며 죄에 끌려 다니고 있는 자신의 비참한 모습을 보며 탄식하였습니다.
우리가 폭군 남편인 율법에서 해방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죽음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신랑이다 맞으라 나오라 하시면서” 내 죄를 대신 감당해 주실 “만유의 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유대인의 왕으로’. ‘영적인 신랑’으로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입니다. 그 결과 결혼이란 법적요소 아래 나를 가두어 두었던 다시 말해 율법이란 굴레로 죄의 노예로 나를 구속시켜놓고 노예처럼 부려먹었던 신랑으로부터 해방되게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볼 때 그런 감격과 해방감이 우리 속에 있어야 합니다.
Ⅲ. 주님의 신부로
본문 4절을 보면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죄나 율법이나 외식이나 형식주의와 같은 옛 남편에게서 값을 지불하기 위해서 예수께서 내 대신 십자가에 죽어주셨고 그리고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다시 영적신부로 시집을 가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쉬운 말로 지금까지 있었던 율법과의 관계는 사별이나 이혼을 한 것처럼 깨끗하게 청산을 하고 우리를 위하여 죽었다가 살아나신 예수님에게 다시 출가를 하여 하나님을 위하여 성령의 열매, 은혜의 열매를 맺으면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열매란 영적자식을 뜻하는 표현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아주 중요한 내용이 있는데 그것은 재혼을 함에 앞서서
옛 사람과의 관계를 깨끗이 청산한 다음에 결혼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끔 보면, 과거를 청산하지 못한 채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해 놓고 결혼 후에도 옛날 애인을 찾아다니는가 하면, 신혼여행을 가서도 옛날 애인의 꿈만 꾸었다는 한심한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과거가 청산되지 않은 가운데서 사람과 만나게 되면 계속 옛 사람에게 매이게 되는 것이며 이것은 다름 아닌 간음인 것입니다. 영적신랑인 주님을 영접해 놓고도 불안하거나 힘들거나 어려울 때면 무당이나 점쟁이들을 찾아다니는 것은 영적간음을 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정결한 주님의 신부로 새롭게 거듭나야 합니다.
여러분! 아직도 여러분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어두운 그림자가 있고 괴로움과 고통이 있으며, 가책과 나약함이 있습니까? 이 이유는 아직도 율법에 매여 있기 때문입니다. 진정 내가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완전히 죽어 율법과의 관계를 깨끗이 청산하고 그리스도와 연합한 새 생활 시작했다면 이제는 꿈을 꾸어도 그리스도의 꿈을 꾸며, 앉으나 서나 그 무엇을 하든 예수 그리스도만을 생각하면서 그 은혜 안에 충만한 은혜의 살아야 합니다. 그런 가정에는 자연스럽게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가 주렁주렁 열려지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성령을 하나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제는 은혜·예수그리스도·성령 곧 새로운 신랑에 매여 은혜의 삶, 성령의 삶, 평화의 삶, 안식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신랑 되신 예수님과 결혼한 영적신부의 행복감입니다.
다시 6절 말씀을 보면,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고 하였습니다. 더불어 로마서 8장 1절부터 2절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니라." 예수님을 영적 신랑으로 맞이한 이후 우리는 율법에서 해방되었고 죄와 절망과 죽음에서 자유하게 되었습니다.
Ⅳ. 은혜의 시대
이제는 새로운 신랑 예수님을 맞이하므로 우리에게 영적 은혜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더불어
은혜의 성령은 우리의 힘이 아니라 은혜의 힘으로 주님과의 감격적인 삶을 살아가도록 우리를 이끌어 줍니다. 이렇듯 율법 아래가 아니라 은혜 아래 살아가는 사람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