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여인의 아들(비유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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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늘찬양하는삶 작성일21-09-07 20:58 조회887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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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여인의 아들
갈 4:21-31,2021.09.12.늘찬양교회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창 15:5)는 축복을 받을 때가 그의 나이 75세였습니다. 그러나 가나안 땅에 머문 지 10년이 지나 아브라함은 85세가 되었고 그의 아내 사라는 75세가 되었습니다. 자녀 출산에 대한 희망이 거의 사라져버린 그때 조급해진 아내 사라가 남편 아브라함에게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 원하건대 내 여종 하갈을 취하여 아들을 낳으라.”(창 16:2)고 말합니다. 이렇게 해서 나은 아들이 이스마엘입니다. 이것을 바울 사도는 “여종에게서 육체를 따라 났다.”(갈 4:23)고 말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이삭은 약속을 따라 “자유 있는 여자에게”(23절)서 얻은 믿음의 아들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모든 인간적 조건, 자연적 조건이 불가능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받은 응답이었으며 신실하신 하나님의 증거였기 때문입니다. 이삭은 정말 약속으로 받은 아들이었습니다. 여기에 아브라함이나 사라의 지혜, 능력, 시도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홀로 행하신 일이었습니다. 이것이 약속으로 말미암은 아들이라는 의미입니다.
Ⅰ. 어머니가 다르다(22절)
이렇게 해서 아브라함의 집 안에 두 아들이 태어났는데 하나는 ‘자유있는 여인’, 사라에게서 낳은 아들 ‘이삭’과 ‘육체를 따라’ 여종 하갈에게서 낳은 ‘이스마엘’이 있었습니다. 이 두 아들은 공통점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모두가 한 아버지인 아브라함의 아들들이었고, 한 집에서 자라났으며, 둘 다 유대인들이 그토록 중요하게 여기는 할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것들이 아니었습니다. 그 둘의 차이점인데, 첫째는 그들의 어머니가 달랐으며, 둘째로는 태어난 방식이 달랐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핵심은 본처 사라에게서 낳은 아들 이삭이라서 더 중요하고 이스마엘은 계집종 하갈에게서 낳은 아들이기 때문에 두 아들의 신분과 존귀함이 다르다고 하는 것은 인격적인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며 또한 신분과 계급 사회에서나 가능한 일이지 지금과 같이 신분과 계급이 사라진 현대에는 맞지 않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 두여인의 운명과 두 아들의 운명을 가르는 기준치, 잣대가 되었을까요?
그것은 출생의 비밀에 있습니다. 바울은 이 차이를 분명하고도 명확하게 25절에 “육체를 따라 난 자와 성령을 따라 난 자”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삭은 약속을 따라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었고 이스마엘은 하나님의 방법 대신 아브라함이 자기 방법으로 시도한 결과로 얻은 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육체를 따라’와 ‘약속을 따라’의 두 차이를 이해하고 순종하며 사는 것은 오늘 비유의 핵심이자 복음의 결말이자 하늘의 상급과 축복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너무나도 중요하고 소중한 내용입니다.
1. 이스마엘의 출생
두 아들이 다 아브라함의 아들이었지만 분명한 차이가 존재했습니다.
먼저 두 아들 중 육체를 따라 낳았다는 이스마엘의 출생을 살펴보겠습니다.
이스마엘은 아브라함과 사라가 세상적이고 육체적인 방법에 따라 상속자를 얻으려고 했었던 결과로 태어난 존재였습니다. 사라는 자신 스스로가 아들을 생산할 수 있는 나이가 지나가 버렸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몸으로 아브라함의 아들을 낳을 것을 포기한 사라는, 아브라함과 의논하여, 사라라는 몸종을 통해서 아들을 생산할 것을 제안하게 됩니다. 즉, 자신은 아들을 낳을 수 있는 가능성이 전무하니 자식을 생산할 능력이 있는 몸종을 통해서, 자식을 얻자는 것이었습니다. 더욱이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고 자연스러움 그 자체였던 시대였습니다. 자녀 출생에 관해 하나님께서 특별히 개입할 여지가 전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렇게 하여 전혀 이상할 것이 없이 인간의 자연스런 방법으로 태어난 존재가 이스마엘입니다.
여기서 아브라함과 사라가 행한 태도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신념이었지, 결코 올바른 신앙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도록 자기들이 팔 걷고 나서서 도와드려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 일을 했고 그 결과가 이스마엘이었습니다. 이렇게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우리 믿음이 온전한 신앙으로 성장할 수 없습니다. 믿음은 언제나 하나님을 향한 절대 무한의 신뢰인데, 자신들의 공로와 방법으로 출산한 이스마엘을 내보이며 “하나님의 선물이지요”라며 신앙의 합리화를 꾀하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저와 여러분은 자기 노력의 산물을 하나님의 선물과 축복으로 위장하고 포장하는 것이 일상화 된 삶 속에서 잘못된 이스마엘이 없는가를 주의 깊게 살펴보고 거기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중요합니다.
2. 이삭의 출생
반면 이삭은 약속을 따라 그리고 성령을 따라 낳았다고 했습니다. 이삭은 인간적인 능력이나 가능성이 완전히 배제된 상태에서, 순전히 하나님의 약속과,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은총으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을 낳고, 십여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제 아브라함의 나이는 100세가 되었고, 어머니 사라는 90세가 되었습니다. 두 사람 다 생물학적으로 도저히 아들을 낳을 수 없는 나이였습니다. 그런데, 아들을 생산하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사라가 아들을 생산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셨다가 이삭이란 아들을 주셨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로 인해 우리는 이삭의 출생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총과 능력으로 인한 약속하신 말씀의 결과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마엘은 행동으로 얻은 아들이고, 이삭은 믿음으로 얻은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마엘은 종교이고 이삭은 복음을 대변합니다. 전자는 율법이고 후자는 은혜를 대변합니다.
Ⅱ. 이삭과 이스마엘의 후손
이삭이 태어났을 때 이스마엘은 14살이었습니다. 이삭이 젖을 떼던 3살 때 이스마엘은 17살이었습니다. 그때 사라가 본 것은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라가 본즉 아브라함의 아들 애굽 여인 하갈의 아들이 이삭을 놀리는지라...”(창 21:9)
놀린다는 말은 ‘희롱하다’ 혹은 ‘가지고 놀다’는 뜻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것을 ‘핍박했다’고 해석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모든 시대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적용되는 원리를 말합니다.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다.”(갈 4:29)는 것입니다.
‘이제도 그러합니다.’ 바울 사도가 갈라디아서를 쓰고 있는 그때도 유대주의자들인 거짓 교사들이 참 성도들인 갈라디아 사람들을 희롱하고 있는 것입니다. 2000년이 지난 지금도 그렇고 교회 역사 속에서도 그랬습니다. 이것은 두 아들이 다 유업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여실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비록 두 아들 모두 아브라함의 혈통적 아들들이었지만, 하나는 약속의 자녀로 유업을 이을 자였고 하나는 종으로서 나가게 될 자였습니다.
1. 이스마엘의 후손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한 것을 본 사라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에게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창 21:10)고 요구합니다. 아브라함이 고민할 때, 하나님께서 “네 아이나 네 여종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지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부를 것임이니라.”(창 21:12)고 말씀하셨습니다.
하갈과 이스마엘이 내쫓김을 받았습니다. 바울 사도가 이 내용을 본문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그들을 거짓된 가르침으로 넘어지게 하는 유대주의자들을 교회에서 내어쫓으라는 말입니다. 거짓된 가르침, 거짓 복음이 교회를 얼마나 무섭게 넘어지게 하는지를 너무나 잘 알기에 바울 사도는 그들을 내어쫓으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바울의 이 같은 권고가 지금 우리에게도 통용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이유를 지금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스마엘이 이삭과 헤어진 후 그의 후손은 이슬람 종교를 만듭니다. 그리고 이슬람 종교를 믿는 신자들을 무슬림이라고 부릅니다. 현재 이슬람은 급증하고 있습니다. 인류 중에 다섯 사람 중의 한 사람이 이슬람입니다. 미국에서도 무슬림들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아프카니스탄 사태로 많은 수의 무슬림이 미국과 한국에 합법적으로 들어와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잖아도 이슬람 사원이 늘어나고 있는 상태에서 우리는 신앙적인 관점을 가지고 앞으로의 상황을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합니다.
전 세계를 중심으로 이슬람 신도들이 급증하는 이유는 그들의 경전 내용이 일반 사람들의 상식과 잘 맞기 때문입니다. 이슬람 종교의 경전은 무함마드가 알라신에게서 받아 적은 코란입니다. 그들은 코란을 믿고 그대로 행합니다. 코란에 의하면 사람이 죽으면 깊은 잠이 듭니다. 언젠가 알라신이 심판하는 날이 올 것인데 그때 사람들은 부활하게 됩니다. 그러면 알라신은 각각의 사람들을 심판하여 천국이나 지옥에 가도록 결정합니다. 누가 천국 가고 누가 지옥 가는지에 대한 심판의 기준은 저울입니다. 저울의 심판대에 각 사람의 선행과 악행을 매달고, 선행이 악행보다 많아서 저울이 선행 쪽으로 기울면 천국, 즉 파라다이스로 판결이 납니다. 그러나 악행 쪽으로 기울면 지옥으로 떨어집니다. 보통 사람들의 종교 개념과 잘 어울리는 내용입니다.
한편 이슬람의 천국 개념은 맛있는 음식과 음료를 실컷 먹으며 향락을 즐기는 것입니다. 그들이 꿈꾸는 파라다이스는 시원한 음료수와 고기 잔치로 가득한 곳입니다. 파라다이스는 젊은 남자들과 젊고 아름다운 여인들로 가득 차 있으며 남자들은 최대 72명까지 젊은 미녀들과 맘껏 향연을 하며 즐길 수 있습니다. 그들은 최고 좋은 안락한 소파에 앉아서 제일 좋은 음악을 들으며 최고의 술을 맘껏 마십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술을 마셔도 건강을 잃거나 두통 등이 없습니다. 그들은 감각적으로 최고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환경이 주어지는 신나는 파라다이스를 믿고 있습니다.
이슬람은 인간은 날 때 선하게 태어난다고 믿습니다. 또한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다고 봅니다. 사람이 악행을 하는 이유는 무지하기 때문이며 망각이 심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코란과 전통을 기억나게 하며 지키게 하면 악행을 행하지 않고 늘 착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슬람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군가를 위해 십자가에서 형벌을 받았다는 복음에 대해 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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