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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만 바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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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늘찬양하는삶 작성일22-02-20 10:29 조회3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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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바라보자!

12:1-2,2022.02.20.늘찬양교회

 

 

2010년 지구촌 최대의 드리마였던 칠레 광부들의 이야기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지하 700갱도에 매몰되었다가 17일 만에 생존이 확인되고, 69일 만에 구출된 칠레 광부 33명은 희망의 메신저들이었습니다. 무너진 탄광 안 칠흑같이 어두운 생지옥 같은 곳에서도 그들은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절망하기 쉬운 땅속이었습니까? 하루 버티기도 버겁고, 한 달 버티는 것도 기적 중의 기적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구출된 칠레 광부 가운데 한 명은 갓 태어난 딸의 이름을 에스파란자라고 지었는데 그 뜻은 스페인어로 <희망>입니다. 광부는 69일 동안 그 차가운 지하 갱도 안에서 딸의 이름을 부르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베트남에서 전쟁포로로 7년 동안 갇혀 있었습니다. 그가 포로로 갇힌 곳은 움직일 수 있는 충분한 공간이 아니었습니다. 이 사람은 골프광이었는데, 감옥에 갇혔기 때문에 골프를 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머릿속으로 상상했습니다. 머릿속으로 골프장에 섰다. 이제 골프채를 잡았다, 스윙한다라고 그리며 골프연습을 했습니다. 평소에 골프 치던 자세를 상상하면서 공이 날아갔구나, 공의 200야드를 날아갔네하면서 계속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리며 꿈을 꾸었습니다. 아마도 스크린 골프장이 이때 출발되지 않았는가 생각해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7년 동안 꿈으로만 골프연습을 했는데 석방된 후 되어 집에 돌아와 골프를 쳤는데, ‘74가 나왔다고 합니다. 저는 골프 경기를 몰라서 ‘74가 잘 치는 것인지 못 치는 것인지 구분이 안 되지만 감옥에 갇히기 전 평상시 실력보다 훨씬 탁월한 실력을 발휘하였다고 합니다. 과학자들의 실험 결과에 의하면 실제 운동선수들이 연습한 것과 상상으로 연습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없다고 합니다. 이것을 이미지 트레이닝(image training)이라고 합니다.

 

어떤 목표가 있을 때 간절히 열망하고 그것을 상상하고 이루진 것처럼 꿈꾸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라봄의 법칙입니다. 저는 2022년 교회표어를 하나님만 바라라!”(62:5)로 정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코로나의 계속되는 위기를 슬기롭게 믿음으로 극복해나가기를 소망하며 정하였습니다. 더불어 앞으로 건강설교는 바라봄이라는 주제로 연속해서 말씀을 증거하려고 합니다.

 

 

. 신앙의 경주

 

24회 동계 올림픽이 베이징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중국의 텃세로 인한 심판의 편파판정으로 쇼트트랙에서 한국선수들이 대거 탈락하는 아픔을 겪고 있는 가운데 황대헌·최민정 선수가 귀한 금·은메달을 수확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앞으로 더 좋은 결과들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오늘 성경 1절 말씀을 보면 신앙생활을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경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신앙의 경주에서 이기려면 어떻게 하여야 하겠습니까? 결승점인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본문 2절에 믿음의 경주에서 승리하기 위해 누구를 바라보라고 하십니까? 예수님을 바라보라고 하십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

 

시선을 예수님께 집중해야 합니다. 사탄의 최대 전략은 사람들의 시선을 예수님으로부터 빼앗는 것입니다. 예수님 자리에 다른 것을 가져다 놓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익이 될 수도 있고, 편리가 될 수도 있고, 기쁨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돈이나 명예, 권력, 쾌락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목표가 되면 신앙생활은 승리할 수 없습니다.

 

가수 송창식씨 노래중에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봐도 가슴에는 하나 가득 슬픔뿐이네." 고래사냥을 해보아도 남는 것은 허무만 남게 됩니다. 헤밍웨이가 <노인과 바다>를 통해 들려주는 이야기의 핵심도 동일합니다. 큰 청새치를 잡지만 배가 그 고기를 끄는 것이 아니라 고기가 배를 끌어갑니다. 힘겹게 고기를 매달고 높은 가격에 팔릴 것을 기대하고 항구로 돌아오지만, 상어들이 다 먹어 버리고 뼈만 남았습니다. 고기에 시선을 집중했지만 정작 허무만 남았습니다. 헤밍웨이는 결국 그 허무를 극복하지 못하고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사람은 예수님으로 채우지 않으면 결코, 해결되지 않는 펑 뚫린 가슴이 있습니다. 예수님으로 채우지 않으면 결국 인생의 끝자락엔 공허와 후회가 남는 것입니다.

 

하비콕스(Harvey Cox)의 저서 '예수 하버드에 오다(When Jesus Came to Havard)'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하버드는 본래 목사들을 양성할 목적으로 세워진 대학이었으나 오랜 역사를 지나면서 점점 종교적 색채를 벗어버렸습니다. 세계적 명문대학의 자리에 올랐지만 커리큘럼이나 카탈로그에서 예수 이름을 빼버린 것입니다. 그 이후 하버드 대학 졸업생들이 온갖 범죄에 연루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1980년대부터 하버드 대학에 윤리적 사유(Moral Reasoning)라는 과목을 신설하게 되었고 하비콕스가 강의하였습니다. 그때 강의하였던 내용이 바로 <예수 하버드에 오다>라는 책의 내용입니다. 예수 없는 하버드가 소금과 빛이 되지 못하니 다시 예수를 좇아가야 한다는 역사적 사실을 전한 것입니다. 역사 속에, 우리의 삶 속에 예수님이 빠져 버리면 앙꼬없는 찐빵에 불과합니다. 기름 없는 차에 불과합니다.

 

"사람을 보며 세상을 볼 땐 만족함이 없었네 나의 하나님 그분을 뵐 때 나는 만족하였네 저기 빛나는 태양을 보라 또 저기 서 있는 산을 보아라 천지 지으신 우리 여호와 나를 사랑하시니 나의 하나님 한 분만으로 나는 만족하겠네...가시밭의 백합화 예수 향기 날리니 할렐루야 아멘"

 

수시로 변하는 세상에 너무 시선을 집중하면 괴롭고 허무하게 됩니다. 간사하고 변하기 쉬운 인간에게 너무 시선을 집중하면 실망하게 됩니다. 연약한 자신에게 너무 시선을 집중하면 의기소침하고 욕심의 노예가 될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을 바라보며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주님 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세상을 바라보며 허무에 사로잡히지 말고 참 만족과 안식을 주시는 주님께 시선을 집중해야 합니다. 연약한 나를 바라보지 않고 강하신 주님만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변질하기 쉬운 나를 바라보지 않고 영원히 변하지 않는 주님만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부족한 나를 바라보지 않고 완전한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넘어지기 쉬운 나를 바라보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폭풍 가운데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고 폭풍을 바라보았을 때 물속으로 빠지는 것처럼 우리가 주님께 시선을 고정하지 않으면 세상 근심·걱정의 노예가 되어 믿음의 경주를 완주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쇼트트랙 선수들이 중국 선수들의 옷깃만 스쳐도 반칙을 당하는 것을 간파하고서는 가장 먼저 앞자리로 치고 나가 달려가므로 억울한 판정을 당하지 않고 메달을 획득한 것처럼 모든 일의 우선순위에 예수님을 놓고 저와 여러분의 삶을 펼쳐나갈 때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2절은 우리에게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 경주의 장애물

 

예수님만 바라보고 달리는 데 있어서 방해하는 것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벗어버려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2가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외적인 것과 내적인 것으로 "무거운 것(오그콘)"은 경주하는데 방해되는 외부적 요인으로 지나친 몸무게나 귀찮은 짐 보따리, 경주를 방해하는 옷 등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직장, 가족, 친구, , 약속, 이런 것들이 이에 속합니다. 주님께서도 이점을 간파하시고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16:13)고 말씀하셨습니다.

 

"얽매이기 쉬운 죄"는 죄의 속성 즉 경주를 방해하는 내부적인 요인을 말하는 것으로 "쉽게 얽어매는", "달라붙는"이라는 뜻입니다. 죄는 우리를 쉽게 얽어맵니다. 단단히 밀착하여 옭아맵니다. 죄는 믿음의 경주에서는 거추장스러운 것으로 쉽게 달라붙어 옭아매는 것입니다. 죄는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너무 쉽게 우리를 노예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리고 그것의 노예가 되어 버리면 믿음의 경주를 완주하지 못하게 됩니다. 개인마다 빠지기 쉬운 죄가 있습니다. 성격적 결함이 있습니다. 쉬게 저지르는 죄가 있습니다. 끊을 수 없는 습관이 있습니다. 믿음의 경주를 하는데 방해되는 생각, 성질, 습관, 행동 등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젊은이에게 쾌락이 될 수 있습니다. 중년에게는 명예와 권력이 될 수 있습니다. 노년에게는 돈에 대한 집착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향해 믿음의 경주를 하지 못하게 하는 것들입니다. 달리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들입니다. 사단은 인간의 이런 약점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신앙경주의 실패자가 되게 합니다.

 

 

. 인내의 경주

 

우리가 예수님만 바라보며 신앙생활에 승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인내로서 달려가야 합니다. 1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경주하기는 경주하되 무엇으로 경주하라고 말씀합니까? "인내"로써 경주하라고 말씀합니다. "인내를 통해, 인내와 함께"라는 뜻입니다. 인내는 완주의 필수요소입니다.

 

히브리서가 기록될 때 이 말씀을 받는 사람들은 심각한 박해와 고난 가운데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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