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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사귐의 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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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늘찬양하는삶 작성일20-06-20 17:23 조회1,33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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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매주 3째주 주일은 건강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 주제는 사귐의 축복입니다. 소제로 1. 하나님과의 사귐, 2.이웃과의 사귐 3. 나와의 사귐 이렇게 나누어 보았습니다. 전문은 아니지만 조금 길어졌네요....


건강설교
사귐의 축복
요 15:5~10.2020.06..21늘찬양교회


Ⅰ. 하나님과의 사귐

하나님이 내게 원하시는 최고의 일은 “너의 분주한 모든 일을 내려놓고 나와 함께 사귀자! 나와 함께 친구하자, 나와 소통하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릴 부르시는 첫 번째 목적 역시 당신과의 친교입니다. 주님과의 사귐입니다. 구원만이 다가 아닙니다. 구원은 시작이고, 그 다음은 계속해서 주님과의 사귐입니다. 하나님과 같이 동행하며 걷는 여정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보내는 시간입니다. 그 사귐 속에서 그분을 깊이 알아가고, 그분을 깊이 알아가며 그 사귐이 더욱 깊어집니다. 친밀함에서 나오는 지식. 친밀한 교제. 친밀한 동행. 친밀한 나눔, 이 모든 영적 행복의 풍요가 사귐의 축복에서 나옵니다.

이 간단한 원리를 모르고 저는 그동안 성공적인 목회자가 되기 위하여 얼마나 힘들고 험난한 길을 쉼 없이 달려왔는지 모릅니다... 주님 앞에 섰을 때 뭐라도 내어놓을 상급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오직 푯대 되시는 하나님 한분만 바라보고 열심히 달려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게 분명하게 말씀해주셨습니다. “아니다. 나는 내게 보여줄 결과물보다 오늘 네 마음을 원한다...너희는 내게로 나와 쉼을 얻으라.”(마 11:28)고 말입니다.

오늘도 많은 목회자들이 교회성장이라는 미명아래 성도수를 늘리기 위해 교회 몸집을 키우기 위해 사생결단이라도 하듯 달려들지만 주님은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로라.”(사 1:11)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심지어 저에게는 “너 먹고 살고자 뛰었지 그게 진정 나를 위해서 한 것이 아니다.”는 충격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런 주님의 음성을 들은 후 저는 정신을 차렸습니다.

주님! 그렇다면 주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최고의 일은 무엇입니까? 주님은 웃으면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말했잖니... 네 마음이라고 네 마음을 내게로 가져오너라. 그리고 와서 나와 대화하며 소통하자구나 그러면 참 된 평안과 기쁨과 행복이 내 안에서 꽃 피어날 것이다. 그러니 모든 욕심과 분주한 목표를 다 내려놓고 내 안에서 먼저 쉼의 안식을 누리거라
...나의 사랑을 그냥 마음껏 누려라...나는 사랑의 하나님이란다.”

Ⅱ. 이웃과의 사귐

두 번째로 그리스도인들은 소자에게 냉수 한 그릇 건네는 심정으로 모든 사람들을 이해하고 사랑하며 돌보는 마음으로 친절한 만남과 교제를 해야 합니다.

왜 청년들은 교회를 떠나고 있는 것일까요? 기독교 리서치 기관 ‘바나 그룹’ 대표 데이비드 키네먼은 《청년들은 왜 교회를 떠나는가》(You Lost Me)라는 책에서 ‘하나님을 믿지 않아서’가 아니라 ‘교회를 이해할 수 없어서’ 떠난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교회가 더 이상 그들을 이해하고 자유를 주는 곳이 아니라 낡은 세계관을 강요하고 전통과 관습의 폐쇄적인 자리에 묶어두는 곳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비전을 주는 것이 아니라 낡은 주문 만을 외우게 한다면 교회에 청년이 설 자리는 없는 것입니다. 청년들은 떠나는 교회를 향해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교회를 떠난 것이 아니라 교회가 우리를 밀어낸 거예요.” “교회는 너무 폐쇄적이에요. 세상과 교회에 양다리를 걸치며 사는 게 싫다고요.”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않은 채 두려움 때문에 뭔가를 하게 만드는 교회가 싫어요.” “교회는 과학을 적대시하고 무조건 믿으라고 하지요.” “교회 안에 머물면서 싸우는 게 낫다는 생각에 오랫동안 버텨왔는데 결국 깨달았죠. 교회 안에 머물면 머물수록 오히려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나빠지고, 나 자신과의 관계도 깨진다는 사실을요!."

저는 성도들에게 남편과 아내는 가정의 선교사로 가족을 관리하고 섬기는 사명자로 부름 받은 것을 감사함으로 여기고 직장과 가정에 일하면서 자녀들을 주님의 사랑으로 섬기고 돌보는 일을 아름답게 감당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이렇게 작지만 내게 주어진 가족을 주님 사랑으로 섬기며 돌보는 일을 통해서 네 이웃도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는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소자에게 냉수 한 그릇 건네는 일”(마 10:42), 그것이 내게 하는 일이라고 가족을 돌보는 일이 아무나 하는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가족을 돌보는 것에 대하여 부모가 대가를 바라고 헌신하지는 않습니다. 그런 마음이 이웃에게도 전가되어 값없이 소자에게 냉수를 주는 것입니다. 냉수 한 그릇은 작은 섬김이기에 표시도 안 납니다. 생색낼 필요도 없습니다. 오직 내가 다른 사람을 작은 것으로 섬길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고 감사할 뿐입니다. 이런 소자의 정신으로 한 사람 한 사람, 더 나아가 이웃과 나라들을 섬기다 보면 멋진 크리스천들이 탄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동안 보이는 어떤 결과물에 집착하여 헌신하고 선교하고 봉사하다보니 아주 작은 일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게 되었고 무관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어린 아이 하나를 세우고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막 9:37)고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사소한 작은 일부터 가족과 이웃을 사랑하며 섬겨보십시오!...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행복과 풍요와 은혜의 기쁨이 샘솟듯 솟아날 것입니다.

Ⅲ. 나와의 사귐

우리에게는 중요한 사귐이 또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나와의 사귐입니다. 따라 하겠습니다. “나 자신과 잘 사귀자.” “나 자신을 많이 사랑하자”

저는 30년 넘게 찬송강해와 찬송가해설 그리고 찬송큐티 등에 올인 하면서 너무 힘들고 바쁜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저 자신을 돌아볼 여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오로지 글 쓰는 사명감, 설교를 준비하고 그것을 전하는 기쁨에 빠져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시간을 아껴 완성한 630여 편의 찬송가 강해가 여러 환경들에 의해 묶이고 말았습니다. 언제 열릴지 모르는 환경 속에서 내 나름대로 해결책을 찾아 자격증 공부를 시작하였고 또 뜻한 바대로 여러 자격증을 취득하면서 좋은 직장을 얻어 일하는 목회자가 되면서 잠깐의 여유를 찾게도 되었습니다.

요사이 페이스북을 통해 몇 명 목사님들이 여유 있게 삶을 즐기면서 목회도 아름답게 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굉장한 부러움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왜 나는 저렇게 할 수 없었을까? 그래 이제라도 늦지 않았지...내 욕심을 내려놓고... 나를 위해 투자하자...천천히 가는 훈련을 하자...멀리 바라보는 훈련을 하자... 이렇게 결단하고
쉼의 시간들을 갖으려고 노력하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기를 서서히 시작했습니다.
...매일 저녁 걷기운동도 하면서 ... 자연과 꽃들과 새들이 노래하는 소리도 듣고, 바람에 휘날리는 나무 잎사귀의 부딪힘 소리도 듣자... 내 속에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나를 주의 자녀로 목회자로 부르신 하나님의 은혜와 임재와 평화가 느껴졌습니다.

내 영이 푸르러야 풍성한 설교가 나오고 풍성한 은혜의 삶을 살 수 있다. 초를 다투는 삶을 살지 말자...더 높아지려고 애쓰지 말자...그러면서 제 자신에게 ...천천히 조금도 여유롭게...괜찮아...조금 늦으면 어때 하면서 저의 완벽성을 깨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많은 노력은 아니지만 생각하나 바꾸었는데...얼마나 제가 자유롭고 행복한지 모릅니다.

내 몸을 사랑해야 합니다. 내 배도 사랑하고 내 다리도 사랑해야 합니다. 내 몸을 함부로 하면 안 됩니다. 바쁜 일상은 아름다운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 작은 것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려 애쓰는 노력을 쓸모없는 것으로 쉬이 만들어 버리고 무기력한 일상이나 그저 살아가야 하는 일상으로 우리의 삶을 대신하려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일상에 반기를 들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상에 작은 것들에서 나를 터치하시고 세우시고 고치시며 변화시키는 주님의 은혜를 느끼지 못하게 하는 불평, 원망, 초조함, 두려움 그런 모든 것에서 빠져나와야 합니다. 돈을 많이 가졌다고 해서, 시간이 많이 있다고 해서 행복을 더 느끼는 것이 아닙니다.

과일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아내가 마트 한 귀퉁이에서 신선도가 떨어지는 과일을 저렴한 가격에 붙여놓은 상품을 큰 보물을 발견한 듯 장바구니에 담으면서 웃음 짖는 그 미소에는 행복과 여유가 담겨 있습니다. 그런 아내를 난 행복한 눈으로 바라보며 덩달아 미소를 보내줍니다.

나는 아침과 저녁 수고한 나 자신에 대하여 격려도 많이 합니다. 오늘 하루도 시작하려고 합니다. 주님 내게 감당할 만한 은혜와 건강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오늘 하루도 잘 견뎌주어서 고맙다. 내일도 잘 부탁한다. 이제 좀 쉬자...하나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살다보니 매사가 나의 노래요 주님과의 속삭임이 되었습니다. 무더운 여름날 시원한 수박 한 덩이를 들고 평상에 앉아 먹는 기쁨과 여유가 내 안에 찾아온 것입니다. 그렇다고 삶과 환경이 크게 변한 것이 아닙니다. 전에 보다 더 경제적으로 어렵고 힘이 든 데도 그러한 행복감이 느껴집니다. 왜냐고요! 나 자신과 많이 이야기 하며 격려해주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스스로의 일상을 가꾸지 않는다면 나눌 것 없는 가시덤불과 우리의 모습이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생각건대 결국 깊은 나와의 사귐은 바쁜 일상에 지지 않고 바쁜 일상을 사귀어 살아가려는 나의 의지와 노력에서 출발됩니다.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일들은 그런 일상 안으로 용기 내어 걸어들어 가서 존재하는 많은 것들을 다시금 주님의 사랑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전적인 태도의 변화입니다. 그러한 변화들이 봄비처럼 저와 여러분의 마른 대지를 적셔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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